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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어떤 관찰에 대한 소견으로 시작하고 싶습니다. 제가 작년에 무엇보다 가장 크게 깨달은 것이 있다면 느림에 대한 책을 낸다는 것이 사실 그 책의 홍보를 위해서 정말 빠르게 움직여야만 하는 극도의 아이러니라는 것입니다. 요즘 저는 시간의 거의 대부분을, 아시다시피 도시에서 도시로, 스튜디오에서 스튜디오로 인터뷰에서 또 인터뷰로 휙휙 날아다니는 데 쓰고 있습니다. 정말 작은 조각으로 책을 나누어 보여주면서요. 왜냐하면 요즘에는 모든 사람들이 어떻게 속도를 줄이는지 알고 싶어하거든요 그런데 어떻게 속도를 줄일 수 있는지를 정말 '빨리' 알고 싶어합니다. 그래서 지난번에는 CNN에도 출연했습니다. 거기에선 방송에서 얘기했던 시간보다 메이크업 하는 시간이 더 많이 걸렸었지요. 그리고 — 사실 이건 그리 놀라운 건 아니지요? 왜냐하면 이것이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의 모습이니까요 빨리감기에 빠져 있는 세상

속도에 집착하며 모든 것을 더 빨리 하면서, 더욱 더 많은 것을 더욱 더 적은 시간 안으로 밀어넣는 세상이지요. 하루하루의 매 순간은 마치 시계와 경주라도 하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캐리 피셔의 말을 빌리자면- 제 약력 소개에도 있는데 재차 언급하는 것입니다만, "요즘에는 즉흥적 쾌감 조차도 너무 오래 걸린다." 라고 하지요. 그리고 만약에 우리가 무엇인가를 더 좋게 만들려고 한다면, 어떻게 합니까? 속도를 높입니다. 그래서 이전에는 다이얼을 돌렸지만, 이제는 스피드 다이얼을 씁니다. 이전에는 읽었지만, 이제는 속독을 합니다. 이전에는 걸었지만, 이제는 빠른 걸음으로 걷습니다. 그리고 물론, 이전에는 데이트를 했는데 지금은 스피드 데이트를 하지요. 또 본질적으로 느린 특성을 갖고있는 것들 조차도 속도를 높이려고 애씁니다. 최근에 뉴욕에 있을 때 짐(헬스장)을 지나가는데 창문에 새로운 저녁 운동 코스 광고가 붙어 있었습니다. 무엇인지 짐작하시지요, 스피드 요가 였습니다. 시간에 굶주린 전문직들에게 완벽한 해결책이 되겠지요. 'Salut to the Sun (태양 경배, 여러 자세가 연속적으로 이어지는 요가동작) ' 를 하고 싶지만 20분 정도만 할애하고 싶은 이들에게요. 사실 이것들은 극단적인 사례들이고 재미있고 웃을만한 얘기들입니다.

하지만 여기에 굉장히 중요한 포인트가 있습니다. 매일의 허덕이는 바쁜 생활 속에 우리는 종종 이런 로드러너같은 생활이 우리에게 어떤 손상을 입히는지 파악하는 능력을 잃습니다. 우리는 속도의 문화에 푹 절여졌지요. 그래서 이것이 우리 삶의 모든 면에서 무엇을 그 댓가로 가져가는지 거의 알아채지 못합니다. 건강, 식생활, 일, 인간관계, 환경, 그리고 우리가 살고있는 공동체와 같은 부분에서요. 그리고 가끔, 이 속도의 문화는 알람을 울립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 우리가 삶을 너무 서두르고 있다는 사실을 경고하기 위해서지요. 진정으로 삶을 살아가는 것 대신에, 우리는 빠른 삶을 살고 있지요, 좋은 삶 대신에요. 그리고 그 알람은 사람들에게 어떤 질병의 형태로 많이 오는 것 같습니다. 아시지요, 기력을 완전히 소모하거나, 혹은 결국 마지막에 몸이 "난 더이상 못하겠어" 하며 타올을 집어던지는 것이죠. 인간관계는 연기 속으로 사라질지도 모릅니다 왜냐하면 우리에게는 다른 이 곁에 함께 있으면서 그들에게 귀기울일 시간, 인내심, 혹은 고요의 시간이 부족했었기 때문입니다.

저의 알람은 제가 아들에게 잠자기 전 이야기책을 읽어줄 때 찾아왔습니다. 하루의 끝에서 아들의 방에 들어가서 - 왠지 여유롭게 있을 수가 없었던 것 같습니다. "더 캣 인더 햇"을 빠르게 읽었을 겁니다. 아마도- 짐작하시다시피, 줄들을 건너뛰고, 문단을 건너뛰고, 때로는 전체 페이지를 건너뛰었을 것이죠. 물론 제 아들은 책을 꿰고 있었고, 그래서 우리는 심한 말다툼을 했습니다 하루 중 가장 아늑하고 가까이 소근거려야 하고 가장 부드러워야 했던 순간에 아버지가 아들에게 책을 읽어주려 앉아서는, 두가지 힘이 싸우는 검투장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제 아들의 스피드와 저의- 아니, 저의 스피드와 아들의 느림과의 충돌이었지요. 이 싸움은 한동안 계속되었는데, 제가 신문 기사에서 빠른 사람들을 위한 시간절약 방법을 훑어볼 때 까지 계속되었지요. 그중 하나가 어떤 책 시리즈를 예로 들었는데 "1분에 끝내는 잠자리 이야기" 였답니다. 지금은 이런 말들을 쓰기가 꺼려지지만, 처음의 제 반응은 아주 달랐습니다. 제 첫 반응은 "할렐루야- 진짜 좋은 생각이다! 이건 잠자리시간에서 더 속도를 내려고 찾던 딱 좋은 방법이잖아." 였지요. 하지만 감사하게도, 제 머리 위에서 전구가 켜졌고. 제 다음 반응은 아주 달랐습니다. 한 걸음 물러서서, 생각했지요, "후아- 정말 이 지경까지 온 건가? 나는 정말로 너무 바빠서, 하루를 마무리하는 시간에서까지 내 아들에게 이야기 대신 요약본으로 때워야겠다 라고 할 정도인 걸까?" 그리고 그 신문을 정리하고- - 비행기에 타는중이었는데요 — 비행기 좌석에 앉아서 꽤 오랜 시간동안 하지 않았던 무엇인가를 했습니다 - 아무것도 하지 않았죠. 그저 생각만 했습니다. 오래, 그리고 열심히요. 그리고 비행기를 내릴 때쯤에, 저는 제가 무엇인가 하기를 원한다고 결론지었지요. 저는 이 로드러너 문화 전체와 이것이 저와 다른 이들에게 어떤 작용을 하고 있었는지를 알아보고 싶었습니다.

제 머리에 두가지 질문이 떠올랐습니다. 첫번째는, 어떻게 이렇게 빠른 상태가 된 것인가? 그리고 두번째는 느려지는 것이 가능한지, 아니면 그러기를 바랄 수라도 있는 것인가? 였습니다. 자 지금, 만약 여러분이 어떻게 이 세상이 이렇게 가속도가 붙게 되었는지 생각하신다면, 유력한 용의자들이 고개를 들겠지요. 여러분은, 도시화, 소비자 중심주의, 일터, 기술을 생각하실 겁니다. 하지만 만약 여러분이 그 용의자 세력들을 꿰뚫어 보신다면 그들을 움직이는 더 깊은 힘, 질문의 근본적 배경이 무엇인지 아실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바로 우리가 시간에 대해서 갖고 있는 생각 자체이죠. 다른 문화들에서는, 시간은 주기적이고 순환적입니다. 거대하고 재촉 없는 원 안에서 시간이 흐르지요. 시간은 언제나 스스로 재생되고 환기됩니다. 반면에 서양에서는, 시간은 선형이지요. 유한한 자원이고, 언제나 고갈되어 사라져 버리지요. 사용하거나, 잃어버리거나, 둘 중 하나입니다. 벤자민 프랭클린이 얘기했듯이, 시간은 돈입니다. 그리고 저는 이것이 우리에게 심리적으로 어떤 등식을 만든다고 생각합니다. 시간은 부족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어떻게 합니까? 속도를 높이지요, 안 그런가요? 더욱 더 많은 것을 더욱 더 짧은 시간에 하고, 또 그렇게 시도합니다. 우리는 매일의 모든 순간을 결승점으로의 질주로 바꾸어 버리지요. 절대로 도달하지 못하는 결승점,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승점인 그곳으로요. 그래서 제 생각에, 앞의 질문은, 이러한 마인드셋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가? 라는 의미인 것 같습니다. 감사하게도, 대답은 '그렇다' 입니다, 왜냐하면 제가 주위를 둘러보기 시작하면서 발견한 것에 의하면, 더 빠른 것이 항상 더 좋고, 더 바쁜 것이 최선이라고 말하는 문화에 대한 글로벌하고 거대한 반작용이 있기 때문이지요.

전 세계를 가로질러, 사람들은 생각하기 어려운 일을 하고 있습니다: 속도를 늦추고 '만약 속도를 늦추면, 로드킬(Roadkill) 당할거야'라고 이야기하는 세상의 지혜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그 반대의 경우가 진실로 나타난다는 것을 발견해가고 있지요. 적절한 순간에 속도를 늦춤으로 인해서 모든 것이 더 나아진다는 것을 발견한 것입니다. 더 잘 먹고, 더 사랑을 잘 나누고, 운동을 더 잘하고 일을 더 잘하고, 더 좋은 삶을 삽니다. 그리고 감속의 순간과 장소와 행동들이 뒤섞인 이와같은 커다란 솥 안에서 많은 사람들이 현재 국제적인 슬로우 무브먼트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지금 제게 약간의 위선적 행동을 허락해 주신다면 '빠르게' 슬로우 무브먼트 안에서 무엇이 벌어지고 있는지 요약을 해 드리겠습니다. 음식을 생각해 보세요, 많은 분들이 슬로우 푸드 무브먼트에 대해서 들어보신 적이 있을 것입니다. 이탈리아에서 시작했고, 세계로 퍼져나가서 지금은 십만의 멤버가 50개 국가에 있습니다. 이는 아주 단순하고 상식적인 메세지에 의해서 움직여집니다. 바로, 우리가 순리에 맞는 속도로 경작하고, 요리하고, 소비할 때 우리의 음식에서 더 많은 즐거움과 건강을 얻는다는 메세지이지요. 또한 유기농업의 폭발적 확산이나 농산물직판장의 르네상스는 또다른 예로서 사람들이 자신의 음식을 산업적 시간표에 의해서 먹고, 요리하고, 경작하는 것에서 절실하게 떠나고 싶어한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은 느린 리듬으로 돌아가고 싶어합니다. 또한 슬로우푸드 운동에서부터 슬로우시티라고 불리우는 움직임이 이탈리아에서 시작되어 자라났는데 유럽을 넘어 그 이상으로 퍼져나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마을들에서는 도시의 풍경을 계획하는 방법을 다시 생각해보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속도를 늦추고, 장미 향기를 맡고, 다른 사람들과 관계를 맺도록 격려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사람들이 과도한 교통량을 조절하고 공원에 벤치나 약간의 녹지를 만들어 놓을지도 모릅니다.

어떤 면에서, 이러한 변화들은 단순히 각각을 합한 것보다 더 강력한 힘을 만들어냅니다. 하나의 슬로우시티가 공식적인 슬로우시티가 되면 이것은 어떤 철학적인 선언과도 같아지기 때문입니다. 세상에게, 또 그 도시의 사람들에게 말하지요, 21세기에, 느림이 해야 할 역할이 있다는 것을 믿고 있다고요. 의학의 경우에, 저는 많은 사람들이 응급상황만 해결하는 현대의학의 미봉책적 사고방식에 깊은 환멸을 느낀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전세계 수백만의 사람들이 보완적이거나 대체된 형태의 의학으로 돌아서고 있지요. 보통은 더 느리고, 부드럽고, 더욱 총체적인 형태의 치료의 경향을 보이는 것들로요. 자, 분명히 이러한 보완적 치료법에 대한 여론이 많고, 그리고 전 개인적으로 커피 관장이라는 것이 주 치료법으로 승인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의구심을 갖고 있습니다. 그러나 다른 치료행위들, 이를테면 침이나 마사지, 그리고 그저 편히 휴식하는 것으로도 분명히 어떤 긍정적 효력을 얻을 수 있습니다. 각광받는 모든 의과대학들은 이런 것들이 어떤 작용을 하는지, 거기에서 무엇을 배울 수 있을지를 알아내기 위한 연구를 시작하고 있습니다.

섹스. 빠른 섹스가 주위에 끔찍하게 많지요? 저는 - 글쎄요 - 말장난을 하려는 것은 아닙니다만. 저는 길을 가고 있었습니다. 옥스포드로 천천히 가고 있었다고 하지요. 가다가 뉴스 가판대를 지나치면서, 잡지를 봤습니다. 남성용 잡지, 그 앞표지에는 "파트너를 30초만에 오르가즘에 이르게 하는 방법"이라고 쓰여 있었지요. 자 그렇습니다, 요즘에는 섹스조차도 스톱왓치 위에 있습니다 자, 여러분 저는 옆사람만큼 빠른 섹스를 좋아합니다, 하지만 슬로우섹스에서 - 침실에서 느린 여유를 갖는 것에서 정말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어떤 더 깊은 심리적, 감정적, 영혼적인 흐름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고 그것이 쌓여 더 좋은 오르가즘을 느끼게 됩니다. 충분히 본전을 뽑는 것 이상의 가치가 있지요. 제 생각에는, 포인터 시스터즈가 느린 손을 가진 연인을 찬양하는 노래를 할 때 가장 풍부하게 잘 표현한 것 같은데, 그렇지 않습니까. 몇년 전 우리 모두는 탄트라식 섹스에 빠졌던 스팅을 보고 비웃었습니다. 하지만 그로부터 몇년을 빨리감기 하면, 지금 여러분은 모든 연령대의 연인들이 워크숍으로 날아들거나, 혹은 아마도 그냥 그들의 침실에서 그들 자신이 브레이크를 걸고 더 나은 섹스를 하는 방법을 찾고 있는모습을 발견하지요. 그리고 물론, 이탈리아에서는- 제 생각에는 이탈리아인들은 항상 어디에서 즐거움을 찾을지 알고있는 것 같습니다만 - 공식적인 슬로우 섹스 운동을 시작했습니다.

일터에서는 — 세계 대부분의 나라에서 — 북미는 확연히 예외가 되고 있지만 — 근무시간이 줄어들고 있습니다. 유럽은 그 하나의 예입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일을 적게 함으로서 그들의 삶의 질이 향상되고, 시간당 생산성 또한 증가하는 것을 발견하고 있습니다. 자, 프랑스의 주 35시간 근무제에는 분명히 문제점이 있습니다 — 너무 많고, 너무 급하고, 너무 융통성없다는 것에서요. 그러나 유럽의 다른 국가들, 특히 노르딕 국가들은, 일 중독이 되지 않고서도 급진적인 경제성장을 이룰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노르웨이와 스웨덴, 덴마크, 핀란드는 현재 지구상에서 가장 경쟁력있는 상위 여섯 국가 안에 있습니다. 그리고 그곳 사람들은 보통의 미국인들을 질투로 울게 할 정도의 시간만을 일하지요. 그리고 여러분이 국가 수준을 넘어서 작은 기업 수준으로 내려가 보신다면, 현재의 더욱 더 많은 기업들이 깨닫고 있지요, 직원들에게 더 적은시간 일하는 것을 허용하거나 편안하게 점심 휴식시간을 갖도록, 혹은 조용한 공간에 앉아있을 수 있도록 하며 블렉베리나 그 뒤에 계신 분의 랩탑이나, 휴대폰을 평일이나 주말 동안에 끄고, 그래서 사람들이 충전할만한 시간을 갖도록 그리고 - 뇌가 어떤 창조적 사고 모드로 들어갈 수 있도록 내버려두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을요.

요즘에는 어른들만이 과로를 하는 것은 아니지 않나요? 아이들도 마찬가지 입니다. 저는 37세이고, 제 어린시절은 80년대 중반에서 마감했습니다 제가 요즘 아이들을 보면, 저는 그저 그 아이들이 한 세대 전에 상상해보았던 것보다 더 많은 숙제, 더 많은 학습지도, 더 많은 과외활동과 함께 경쟁하고 있는것에 놀랄 뿐입니다. 제 웹사이트에서 받은 가장 가슴아픈 이메일들은 사실 청소년들에게서 오는 것인데 극도로 지친 상황에서, 제게 그들의 부모님들에게, 속도를 늦추게 도와 달라고, 이 전속력으로 달리는 러닝머신에서 내리도록 도와 달라고 편지를 보내 주기를 간청하는 메일들 입니다. 다행스럽게도, 육아에도 거대한 반작용이 있습니다. 미국에 있는 마을들이 연합해서 한달 중 어느 특정한 날에 과외활동을 금지하고, 그래서 사람들이 긴장을 풀고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속도를 늦출 수 있도록 합니다.

숙제는 또다른 문제입니다. 선진국에서는 전반적으로 수년 동안 숙제를 산처럼 주던 학교들에서 숙제 금지 운동이 샘솟고 있는데 지금 그 학교들은 '적을 수록 많이 얻는다'는 것을 발견하고 있습니다. 최근에 스코틀랜드에서 이러한 경우가 있었는데요, 학비를 내는 수준 높은 사립 학교였습니다, 13세 이하의 모든 학생들에게 숙제를 금지했는데, 교육열 높은 부모님들이 엄청 화를 내며 말했지요, "뭐 하는 겁니까 - 애들 성적이 떨어질 거라고요" — 교장선생님이 말했습니다. "아닙니다, 여러분의 아이들은 언젠가는 결국 속도를 늦춰야 합니다." 그리고 지난달에 막, 시험 결과가 들어왔습니다, 수학, 과학 부분에서의 점수가 작년 평균에서 20퍼센트 올라갔습니다. 제 생각에, 바로 여기에서 밝혀진 것은 부모들이 자녀들을 조종하고 과보호하는 이유로 지목되는 엘리트 대학교들, 그곳에 들어가는 우수한 재량의 학생들이 정작 실패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채기 시작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 아이들은 놀라운 성적을 가졌고, CV(이력서)는 여러분의 눈에서 눈물이 나오게 할 정도로 특별활동 투성이이지요. 그러나 그들은 어떤 번뜩이는 섬광이 결여되어 있습니다. 창조적으로 생각하거나 틀을 벗어난 생각을 하는 능력이 부족합니다. 그들은 어떻게 꿈을 꾸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옥스포드와 캠브리지 등의 아이비 리그 학교들은 학부모와 학생들에게 제동을 걸 브레이크가 조금 필요하다고 메세지를 보내기 시작했습니다. 예를들어, 하바드에서는 학부 신입생들에게 편지를 보내서— 속도에 브레이크를 걸면 그들의 일상과 하바드에서 더 많은 것을 얻을 것이라고 얘기해 줍니다. 보통 보다 적은 양의 일을 하더라도, 어떤 대상을 즐기기 위해서, 온전히 음미하기 위해서 그 대상에게, 그것이 필요로하는 시간을 주는 것입니다. 때로 전혀 아무것도 안할 때가 있다 하더라도요. 그 편지는 - 아주 명시적인 제목이라고생각하는데 — "슬로우 다운!" 이라고 불립니다. 끝에 느낌표를 포함해서요.

여러분이 무엇을 보던지, 그 메세지는 동일해 보입니다. 더 적은 것에서 아주 빈번히 더 많은 것이 얻어지고, 더 느린 것이 종종 더 나은 것이 됩니다. 그러나 물론, 속도를 늦추기가 쉽지는 않지요, 안 그렇습니까? 여러분은 제가 느림의 혜택에 대한 제 책을 연구하고 있을 때, 과속딱지를 떼었다는 얘기를 들으셨을 것입니다. 그건 정말입니다.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에요. 그때 사실 저는 슬로우푸드가 주최한 저녁식사를 위해 길을 가고 있었습니다. 많이 부끄럽지 않을 얘기라면, 제가 그 딱지를 이탈리아에서 받았다는 것이지요. 만약 여러분 중 한분이라도 이탈리아의 고속도로에서 드라이브해보신 경험이 있으시다면 제가 어느정도 빠르게 가고 있었는지 짐작하실 수 있을 겁니다.

(웃음)

왜 이렇게 속도를 늦추는 것이 어려울까요? 다양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는 - 스피드는 즐겁기 때문입니다. 스피드는 섹시하죠. 아드레날린이 질주합니다. 쉽게 포기하기 어렵지요. 일종의 형이상학적 측면으로는 — 속도가 우리를 크고 깊은 의문들로 가지 않게 방어하는 한 수단이 되고 있다는 것이 있습니다. 우리는 머리를 정신없이 산만함과 바쁨으로 채우고 그래서 질문할 필요가 없게 합니다. 나는 괜찮은가? 나는 행복한가? 내 아이들은 잘 자라고 있나? 정치가들은 나를 대신해 좋은 결정들을 내리고 있는가? 같은 것들을요. 또다른 이유는 - 아마도 가장 강력한 이유라고 생각하지만요 — 왜 느려지기가 어려운가는, 그것이 문화적 금기로서 우리가 느려지는 것에 대해서 경직되어왔기 때문입니다. 느림은 우리 문화에서 더러운 단어입니다. 게으름이나 농땡이치는 사람의 다른 말이고 포기하는 사람이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 사람은 조금 느려."는 실제로 바보같다라는 말과 동의어입니다.

제 생각에 슬로우 무브먼트의 목적, 혹은 주요 목표는 정말로, 그 금기를 깨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 네, 때로 느림은 정답이 아니라는 것도 얘기하기 위해서입니다, "나쁜 느림" 같은 것도 있으니까요. 최근 저는 런던 외곽순환도로인 M25에서 옴짝달싹 못하게 되었지요, 그곳에서 3시간 반을 보냈습니다. 그것은 정말 나쁜 느림이라고 말할 수 있지요. 그러나 그 새로운 생각, 슬로우 무브먼트에서 나오는 혁명적인 아이디어와 같은 것은, "좋은 느림"이 역시 있다는 것 입니다. 좋은 느림이란, 아시다시피, TV스위치를 끄고 가족과 함께 저녁을 먹으며 시간을 보내는 것이지요. 아니면 — 업무에서 최선의 결정을 내리기 위해서 사무실에 앉아, 어떤 문제점을 모든 각도에서 바라보는 시간을 보내는 것입니다. 혹은 그저 단순히 속도를 늦추고 당신의 삶을 음미하며 시간을 보내는 것이기도 합니다.

자, 이 책이 나온 이후에 책을 둘러싸고 벌어진 모든 사건들에서 가장 좋아졌다고 생각된 것 중 하나는 책에 반응하여 나타난 행동입니다. 느림에 대한 제 책이 나왔을 때, 뉴에이지 단체에게서 환영 받았을 것을 압니다. 하지만 기업 세계도 역시, 매우 즐겁게 입맛을 다시며 받아들였습니다. — 아시듯, 일종의 비즈니스 홍보에서, 그리고 또 큰 기업들과 리더쉽 기관들에서요. 왜냐하면 피라미드의 제일 위에 있는 사람들, 제 생각에 여러분같은 분들이 실감하고 있으신 것입니다, 시스템 속에 스피드가 너무 많다는 것을, 너무 많은 바쁨이 있고, 그래서 이제는 잃어버린 기어 변속의 예술을 찾거나, 다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을요. 또 다른 고무적인 현상은, 이것이 단지 선진국에서만 지지된 생각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개발도상국에서 세계 일류로 세계 일류로 도약하려는 경계에 있는 나라들 — 중국, 브라질, 타이, 폴란드 등등 — 이 나라들이 슬로우 무브먼트의 정신을 껴안았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미디어에서, 길거리에서 토론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제 생각에 그들은 서양을 보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얘기합니다, "글쎄, 우리는 당신들이 갖고 있는 면을 좋아하긴 하지만, 그것들에 대해 그리 확신하지는 않아."

자 그래서, '가능합니까?' 이것이 우리 앞에 던져졌던 진짜 중심의 질문이었습니다. 속도를 늦추는 것이 가능합니까? 그리고 저는 — 저는 그 대답이 'yes'로 메아리치고 있다고 여러분께 말씀드릴 수 있어 행복합니다. 그리고 제 자신을 '증거물 A'로서 공개합니다. 개선되고 원상으로 회복된 스피드중독자의 일종으로서요. 저는 여전히 스피드를 사랑합니다. 아시다시피, 저는 런던에 살고, 저널리스트로 일합니다. 와글거림과 바쁨을 즐기고, 그 둘에서 작용하는 아드레날린의 질주를 즐기지요. 아주 빠른 스포츠인 스쿼시와 아이스 하키를 하고, 이 둘은 무슨 일이 있어도 절대 그만두지 않을 겁니다. 하지만 또한 저는 작년 한 해, 혹은 그정도의 시간에 걸쳐 '제 안의 거북이'와 접촉해 왔습니다.

(웃음)

그것이 의미하는 것은 저는 — 더이상 자신에게 불필요하게 과중한 짐을 지우지 않는다는 것 입니다. 저의 디폴트 모드는 더이상 '빨리빨리중독자' 가 아닙니다. 저는 더이상 날개단 듯 빠른 시간의 수레바퀴가 가까이 오는 소리를 듣지 않습니다, 적어도 예전에 들었던 것 만큼 듣지는 않습니다. 사실은 지금 들을 수 있는데요, 제 강연 시간이 똑닥똑닥 끝나 가니까요. 그래서 지금까지의 모든 것의 결론은 저는 실제로 지금까지의 어느 순간보다 더 많이 행복하고, 건강하고 더 생산적이라고 느낀다는 것입니다. 저는 제 삶을 살아가고 있다고 느낍니다, 단순히 경주해나가는 삶이라기 보다는요. 그리고 아마도, 가장 중요한 성공의 척도는 이것일 텐데, 제 인간관계가 훨씬 더 깊고, 풍부하고, 단단해졌다고 느껴집니다.

그리고 저에게는, 리트머스 테스트 , 작용이 되는지 의미가 무엇인지 판단하기 위한 이 테스트는 항상 잠자리 이야기 시간이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것이 일종의 여행 시작점이니까요. 그리고 이 뉴스 또한 장미빛으로 밝습니다. 저는, 아시다시피, 하루가 끝날 무렵 아들 방으로 들어갑니다. 시계를 차지 않습니다. 컴퓨터의 전원도 끕니다. 때문에 이메일이 메일박스로 핑 들어오는 소리를 들을 수 없지요, 그리고 저는 그저 아들의 페이스에 맞추어 느려지고 —함께 책을 읽습니다. 아이들은 그들 자신의 템포와 내부 시계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아이들이 여러분에게 마음을 열 시간을 10분만으로 짜 놓았다면, 그 아이들은 좋은 시간을 보내지 못합니다. 아이들은 여러분이 아이들의 리듬으로 움직여주기를 원합니다. 저는 10분동안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면, 제 아들이 갑자기 이렇게 이야기할 것을 압니다. "있잖아요, 오늘 놀이터에서 정말 짜증났던 일이 있었어요." 그러면 우리는 이야기를 잠시 접고 그 일에 대해서 대화를 하겠지요. 이제서야 저는 그동안 잠자리 이야기가 일종의 오늘의 할 일 목록에 있던 상자, 제가 두려워했던 어떤 것이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왜냐하면 그 시간은 너무 천천히 움직이고, 저는 빨리 지나가야만 했으니까요. 그 시간은 이제 하루 끝에 있는 보상의 시간이 되었습니다. 제가 정말 — 정말로 소중하게 생각하는 시간으로요. 오늘 오후에 있었던 제 이야기를 약간의 헐리우드 엔딩으로 끝낼까 합니다. 이런 식의 이야기 입니다.

몇달 전, 저는 또다른 북 투어를 가기위한 준비를 하고 있었고, 짐을 꾸렸습니다. 저는 아래층의 현관 문 앞에 있었고 택시를 기다리고 있었지요. 그때 제 아들이 계단을 내려왔습니다. 그 아이는 - 저를 위해서 카드를 만들었고 그걸 들고 있었지요. 카드 두개를 스테이플러로 찍었습니다. 이것처럼요, 두개를 같이. 그리고 아이가 좋아하는 스티커 하나를 붙였겠지요, 틴틴 캐릭터를. 앞부분에요. 아들은 제게 말했습니다, 아니 이것을 제게 건네고 — 제가 읽었지요, "아빠에게, 사랑하는 벤자민으로부터." 라고 쓰여 있었습니다. 저는 생각했지요, "아, 이거 정말 사랑스럽구나, 북 투어를 위한 행운의 카드일까?" 아이는 얘기했습니다. "아니, 아니에요, 아빠 — 이건 세상에서 최고로 이야기를 잘 읽어주는 사람을 위한 카드에요." 저는 생각했지요. "아, 속도를 늦추는 것으로 정말 되는구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