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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를 힘들게 하는 일에 대해 말하고자 합니다. 왠지 모르게 여러분들 중 일부도 저와 비슷한 증상을 겪었으리라는 생각이 드네요. 미술관을 돌아다닐 때, 수많은 작품이 걸려있는 방들을 한 15분, 20분 정도 돌아보고 나면 작품에 대해 생각하고 있지 않는다는 걸 깨달아요. 나를 작품과 연관지으려 하지 않고 그 대신, 커피 한잔을 마셔냐겠다거나 졸음을 쫓아야겠다는 절박한 생각이 들죠. 갤러리 피로 증상을 겪고 있기 때문입니다.

혹시 저와 같은 증상을 겪는 분들- 네, 네, 많이 계시네요! 물론 이런 증상을 20분 넘게 겪는 분도 계시고, 혹은 그보다 짧게 겪을 수도 있지만, 어쨌든 우리 모두가 이런 증상을 겪는다는 거죠. 이에 따른 죄책감도 느끼고요. 전 벽에 걸린 그림들을 보고 이런 생각을 한답니다. 누군가는 저 그림을 벽에 걸 가치가 있다고 생각해서 걸어 놓았나본데, 제가 늘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아니라는거죠 솔직히 대부분은 그렇게 보지 않아요.

그러고 나면 뭔가 기분이 찝찝해지죠. 스스로에게 왠지 모를 죄책감도 느끼구요. 그림이 이상하다는 생각은 하지 않고 내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그런 마음으로 갤러리를 나서는 게 기분좋은 경험은 아니죠.

(웃음)

우리가 좀더 편하게 둘러보았으면 좋겠어요. 음식점에 왔다고 생각해보세요. 메뉴판을 보고, 거기에 있는 음식을 모두 다 주문하려 하나요? 아니죠! 그 중에서 고르는 거죠. 셔츠 한장 사려고 백화점에 가서는 모든 셔츠를 일일이 입어보고 셔츠를 다 갖고 싶어하나요? 물론 아니죠, 선택해야죠. 그게 정상이고요. 그럼, 왜 미술관에서는 이런 선택이 이상하게 느껴지는 걸까요? 우리는 왜 그림 하나하나에 의미를 부여해야 하는 걸까요?

전 좀 다른 접근을 해봅니다. 두 가지 시도를 하는데요. 미술관에 가면, 저는 먼저 모든 작품을 재빨리 둘러본 다음, 왠지 모르게 이끌리는 작품 몇점을 선정합니다. 왜 이끌리는 지는 모르지만, 그냥 자석처럼 저를 잡아당기는 작품 말이죠. 다른 작품들은 다 잊고, 그 그림이 있는 곳으로 갑니다. 제가 맨 먼저 하는 일은, 저만의 큐레이션을 하는 거예요. 그림 하나를 골랐죠. 그저 50개의 작품 중 하나일 지도 모르죠. 그리고 나서, 두번째로 하는 일은, 그 그림 앞에 서서 저만의 이야기를 만들어냅니다. .

왜 이야기냐고요? 글쎄요. 이상하게도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건 우리의 DNA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모든 일에 대해서 이야기를 만들죠. 아마도 그건, 이 세상이 하도 복잡하고 정신 없기 때문에 그런 세상을 조금이나마 이해하기 위해서, 이야기를 짓는게 아닐까요. 이걸 미술 작품 감상에 적용하는 건 어떨까요? 그래서, 음식점에서 메뉴 보듯이 미술 작품을 감상하는 거죠.

지금 여러분께 3개의 작품을 보여드리겠습니다. 저를 멈추게 한 작품들, 제게 이야기를 짓게 한 작품들이죠. 첫 작품은 좀 익숙하실 텐데요. 17세기 네덜란드의 화가 요하네스 베르메르의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 라는 작품입니다. 눈부시게 아름다운 작품이죠. 제가 19살일 때 처음 보았는데, 보자마자 나가서 이 작품의 포스터를 샀어요. 30년이 흐른 지금까지 아직도 집에 걸려 있답니다. 저는 이걸 가는 곳마다 가지고 다녔어요. 한번도 질린 적이 없는 작품이예요.

이 작품의 소녀가 저를 붙잡을 수 있었던 첫 번째 특징은 화가가 쓴 화려한 색깔과 소녀 얼굴에 비춰지는 빛이에요. 하지만 여러 해가 지나도록 제가 이 작품에 관심을 가지는 이유는 소녀 얼굴에 드리워진 갈등을 겪는 표정입니다. 기쁨인지 슬픔인지 알 수 없는 표정이죠. 가끔은 기뻐 보이기도 하고 가끔은 슬퍼 보였어요. 그래서 자꾸만 다시 원점으로 돌아왔죠.

포스터를 벽에 건지 16년만에, 침대에 누운 채 소녀를 바라보며 이런 생각을 했어요. 베르메르는 어떻게 소녀에게 이런 감정을 불어넣을 수 있었을까? 그 순간 처음으로, 소녀의 표정은 소녀가 베르메르에 대해 느끼는 감정을 나타내는 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전에는 늘 소녀의 초상화라고만 생각했었는데, 지금은 소녀와 화가의 관계를 그린 거라고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어떤 관계일까?' 라는 생각을 했죠.

그 관계를 찾아내겠다고 마음 먹은 저는 자료 수집 끝에, 이 소녀가 누구인지 아무도 모른다는 걸 알아냈어요. 사실, 베르메르의 인물화 모델 중 누구도 베르메르의 그림에 대해서 신원이 밝혀진 사람이 없죠. 베르메르에 대해서도 알려진게 조금 밖에 없어요. 그것은 저를 신나게 만들었어요. 내 맘대로 이야기를 마음껏 지어낼 수 있을 테니까요.

자, 제가 이야기를 짓게 된 과정을 설명할게요. 먼저, 소녀가 베르메르의 집에 있을 구실을 만들었어요. 베르메르가 소녀를 어떻게 아는 걸까요? 소녀가 베르메르의 12살 짜리 딸이라는 의견이 많이 있긴 했어요. 베르메르가 이 그림을 그릴 때 12살 짜리 딸이 있었거든요. 하지만 제 생각은 달랐어요. 아주 가까운 관계일 것 같긴 하나 딸이 아빠를 바라보는 표정은 저렇지 않거든요. 왜냐하면, 저 당시 네덜란드의 그림에서는 여인이 입을 벌리고 있으면 성관계를 나타내죠. 베르메르가 딸을 그런 식으로 그린다면 부적절하겠죠.

따라서 소녀는 베르메르의 딸이 아닙니다. 하지만 베르메르와 물리적으로 가까운 사람이죠. 그럼 딸 말고도 집에 누가 살고 있었을까요? 하녀, 사랑스러운 하녀가 살고 있었겠죠. 자, 소녀는 집안에 있어요. 어떻게 하면 베르메르의 작업실에 소녀를 들일까요? 베르메르에 대한 정보는 많지 않지만 우리가 아는 몇 가지를 모아보면, 천주교 여성과 결혼해 장모님과 함께 살았고, 개인 작업실이 따로 있는 집에서 살았고 자녀가 11명이었다는 사실은 알려져 있어요. 집안이 혼란스럽고 시끄러웠겠죠. 근데 베르메르의 그림들을 보면 믿을 수 없을 만큼 고요하고 차분하답니다.

11명의 아이들이 돌아다니는 집에서 어떻게 저렇게 차분한 그림들을 그릴 수 있었을까요? 자신을 철저히 격리시켰기 때문이죠. 작업실에 들어가면서 이렇게 말했겠쬬. "여긴 아무도 못 들어와." 아내도, 아이들도. 뭐, 하녀는 청소해야 하니까 들여보내자." 소녀가 작업실에 들어옵니다. 둘이 작업실에 같이 있는 상태죠. 베르메르는 소녀를 그리기로 합니다.

소녀에게 아주 수수한 옷을 입힙니다. 베르메르의 다른 그림에 나오는 대부분의 여성들은 벨벳, 비단, 털 같이 사치스러운 옷을 입고 있어요. 근데 소녀의 옷차림은 굉장히 평범하죠. 평범하지 않은 것은 진주귀걸이입니다. 소녀는 하녀라고 했는데, 어떻게 진주 귀걸이를 살 수 있겠어요. 소녀의 진주 귀걸이가 아니죠. 그럼 누구의 귀걸이죠? 우연히 그 의 부인 카타리나가 가진 옷 목록이 밝혀졌는데요. 그 중에는 하얀 털이 달린 노란 색 코트, 노란색과 검정색이 섞인 보디스처럼, 다른 그림들에 자주 나오는 옷들이 있어요. 그림에서는 이 옷들을 서로 다른 여인들이 입고 있고요. 그러니까, 부인의 옷을 다른 여인들에게 빌려준거죠. 따라서 진주귀걸이도 부인의 것이라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겠죠.

자, 그럼 이야기의 구성 요소는 다 갖추고 있네요. 소녀는 베르메르와 오랜 시간 동안 작업실에서 함께 있어요. 이런 그림을 그리는 데에는 시간이 많이 걸리거든요. 오랫동안 단둘이 있었을 겁니다. 소녀는 부인의 진주 귀걸이를 한 상태로요. 아름다운 그녀. 베르메르를 사랑하는 게 분명하죠. 그래서 갈등을 겪고 있어요. 부인은 이 사실을 알까요? 아마도 모르겠죠. 만약 부인이 모르고 있다면, 뭐 그렇게 이야기가 이어지죠.

(웃음)

다음으로 설명할 그림은 샤르댕의 "카드로 집을 짓고 있는 남자아이"라는 작품입니다. 정물화로 잘 알려진 18세기 프랑스 작가죠. 하지만 그는 때때로 사람들을 그리기도 했어요. 사실, 그는 이 그림을 4가지 버전으로 그렸어요. 각기 다른 소년들이 집중해서 카드로 집을 짓고 있죠. 저는 이 버전이 가장 마음에 들어요. 다른 그림에서는 소년들이 더 나이가 많거나 적은데, 저에겐 이 아이가 골디락스의 죽 (역주: 동화에서 골디락스라는 소녀가 세 개의 죽 중 딱 입맛에 맞는 걸 고름)처럼 딱 알맞아요.

아이라고 하고도 그렇고, 어른이라고 하기도 좀 그렇죠. 딱 순수함과 노련함 사이에 있는 나이입니다. 그게 저의 눈길을 확 끌었던 거예요. 소년의 얼굴을 보았죠. 베르메르의 그림과 비슷해요. 왼쪽에서 빛이 들어와 소년의 얼굴을 드리우고 있어요. 그림 한가운데서요. 그리고 그걸 보면서 전 제가 어느새 "나를 봐. 제발 나를 바라봐." 라고 말하고 있다는 걸 깨닫게게 되었어요. 하지만 그는 저를 보지 않았어요. 카드만 바라보고 있죠. 그게 이 작품의 매력 가운데 하나예요. 소년은 너무 몰두한 나머지 우리에게 눈길을 주지 않죠. 뭔가 확실하게 결론이 나지 않는 작품, 저에겐 그것이야말로 걸작의 증거입니다. 소년은 결코 저를 쳐다보지 않겠죠.

그래서 저는 이런 상황이라면, 소년을 관찰하고 있을 사람은 누굴까? 라고 생각했어요. 화가를 빼고요. 화가라고는 생각하고 싶지 않네요. 저는 그 소년보다 더 나이가 든 사람을 생각하고 있어요. 남자, 하인, 나이가 많은 하인이 젋은 하인을 보면서 "이봐. 너가 앞으로 겪게 될 일에 대해 이야기 할 게 있다. 그러니 날 좀 보라구." 라고 말하는 거죠. 그러나 소년은 돌아보지 않고요.

결말에 대한 불확실성.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에서 나타난 불확실성은 소녀가 기쁜건지, 슬픈건지 알 수 없다는 겁니다. 저는 이 소녀에 대해 소설 한 권을 썼는데도 아직도 소녀가 기쁜지 슬픈지 알 수 없어요. 계속해서 다시, 궁금증을 채워 줄 단서를 찾기 위해 그림을 보고, 또 봅니다. 잠시동안 만족할만한 이야길 지어내지만, 결국 만족할 수 없어서 다시 원점으로 돌아옵니다.

제가 설명하려는 마지막 작품은 익명의 사람이 그린 "익명"이라는 작품입니다.(웃음)

국립초상화미술관이 소장하고 있 는 튜더 왕가 때의 작품입니다. 처음엔 토마스 오버베리 경의 초상화라고 생각했어요. 나중에 오버베리 경이 아니었다는 게 밝혀지고 나자, 그가 누군지 아무도 모르게 되었죠.

국립초상화미술관에서는 작품의 전기를 모르면 사실상 쓸모가 없습니다. 누구의 초상화인지도 모르기 때문에 벽에 걸 수도 없고요. 그래서 안타깝게도, 이 '고아 작품'은 다른 수많은 '고아 작품'들과 함께 창고에 쳐박혀 지내야 했습니다. 그 중에는 아름다운 작품들도 몇 점 있었어요.

하지만 이 작품이 저를 붙잡은 데에는 3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하나는 그의 웃고 있는 입과 애련한 눈빛 사이의 괴리감 때문이에요. 그는 행복하지 않습니다. 왜 일까요? 저를 매료시킨 또 다른 점은 바로 그의 밝고 붉은 뺨이었습니다. 그는 얼굴을 붉히고 있죠. 자기 초상화를 만들기 때문에요. 쉽게 볼이 발개지는 사람이었을 겁니다. 무슨 생각이 그의 볼을 붉게 만들었을까요? 제 발걸음을 멈추게 한 이 작품의 또 다른 매력은 바로 정말 멋진 더블릿입니다. (*역주: 14~17세기에 남성들이 입던 짧고 꼭 끼는 상의) 실크로 만든 잿빛의 아름다운 단추. 그 조화는 제게 일종의 아늑하고 푹신한 - 침대위의 이불을 생각나게 합니다.

계속해서 침대와 빨개진 뺨을 생각하면서 그를 볼 때마다 성관계에 대한 생각이 들게 했죠. 그도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까? 라고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에 대한 이야기를 만드는 과정에서, 마지막으로 뭘 넣을까? 고민했죠. 튜더 왕조의 신사들은 무엇에 사로잡혀 있었을까요? 전 그 대상을 헨리 8세로 생각했고 아마도 그는 상속과 그의 후계자에 관한 생각으로 사로잡혀 있었겠죠. 누가 그의 이름과 유산을 이어받을까요? 이 모든 것들을 모아보면, 여러분은 여러분들의 궁금증에 대한 갈증을 해소해 줄 이야길 만들게 됩니다. 자, 제 생각은 이렇습니다. 짧아요.

"로지" (Rosy:장밋빛)*

아직도 난 케롤린이 준 하얀색 양단 더블릿을 입고 있다. 수수한 높은 깃에, 붙였다 뗄 수 있는 소매 비단실이 복잡하게 꼬여 있는 단추, 나한테 딱 맞게 만든 옷. 이 더블렛은 큰 침대위의 침대보를 생각나게 한다. 아마도 그게 그녀의 의도였을지도 모른다. 처음으로 그걸 입은 건 그녀의 부모가 우리를 위해 정성스런 만찬을 열었을 때다. 내가 연설을 하려고 일어서기도 전에, 내 뺨이 불타오르고 있음을 알았다. 나는 늘 심하게 운동을 하거나 와인이나, 들뜬 기분으로 쉽게 볼이 발개지곤 했다.

어렸을 때 누나들과 학교 친구들이 놀리곤 했지만 조지는 놀리지 않았다. 조지만이 나를 로지라고 부를 수 있었다. 다른 사람들이 그렇게 부르는 걸 허락할 수 없었다. 조지는 그 단어를 다정하게 말하곤 했다. 내가 결혼 발표를 하자, 조지는 발개지긴 커녕, 내 더블렛만큼 창백해졌다. 그가 놀랄 것도 없었는데. 언젠가는 내가 그의 사촌과 결혼을 할거란 것은 쉽게 예측할 수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 얘기를 큰 소리로 듣기는 힘들었다. 나도 겨우 그 얘기를 꺼낼 수 있었다.

나중에 부엌 정원이 내려다 보이는 테라스에서 조지를 찾았다. 오후 내내 술을 들이켰는데도 그는 여전히 핼쑥했다. 우리는 함께 서서 양상추를 자르는 하녀를 바라봤다. "내 더블렛 어때?" 나는 물었다.

조지는 나를 흘낏 보며 말했다. "옷깃이 네 목을 조르는 것 같아."

"우린 계속 만나게 될거야" 나는 강조했다. "같이 사냥도 나가고, 카드놀이도 하고, 궁궐도 가고. 아무것도 변하지 않을 거야." 조지는 아무 말이 없었다. 난 벌써 23살이야. 이제 나도 결혼해서 후계자를 낳아야 할 때가 온 거라고. 다들 내가 그러길 바래.

조지는 포도주 한 잔을 비우고, 나를 바라봤다. "결혼 축하한다, 제임스. 둘이 잘 어울려." 그는 내 별명을 다시는부르지 않았다.

고맙습니다.

(손뼉)

고맙습니다.

(박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