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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lated by Chloe Go
Reviewed by Keumseong Bang

0:11 오늘 저는 조금은 불편한 질문에 대한 답을 찾으려 합니다. 민간인들 그리고 물론 군인들은 전쟁으로부터 고통을 받습니다; 민간인 누구든지 이러한 고통을 가하는 전쟁을 그리워 한 적은 없을 겁니다. 제가 20년 동안 전쟁을 취재해오면서 놀랐던 것 중 하나는 얼마나 많은 병사들이 스스로 전쟁을 그리워하고 있는지입니다. 어째서 누군가는 상상할 수 있는 최악의 경험하고서, 자신의 보금자리와 가족 곁으로, 자신의 조국으로 돌아와서도 전쟁을 그리워할 수 있는 걸까요? 도대체 이게 어떻게 된 것일까요?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요? 우리는 그것에 대한 답을 찾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렇지 않으면 그들을 자신이 속한 사회로 돌려 보내는 것이 불가능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전쟁을 멈추는 것 또한 불가능할 것입니다 만약 우리가 그 이유를 찾지 못한다면요.

1:09 하지만 문제는 전쟁에 단순하고 간단한 사실은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의 단순하고, 명확한 진실이요.

1:18 정상인이라면 누구든 전쟁을 싫어합니다. 전쟁이라는 개념 자체를요. 전쟁에 관련된 그 어떤 것에도 엮이고 싶어하지 않으려하고 근처에 가기 조차 원치 않을 뿐더러 알고 싶어하지도 않아요. 그게 바로 전쟁에 대한 정상적인 반응입니다. 그런데 제가 만약 여기계신 모든 분들께 돈을 주고 영화관에 가서 할리우드 전쟁 영화를 본 적이 있으시냐고 물으면 거의 모든 분들이 손을 들 것입니다. 그게 바로 전쟁이란게 난해한 이유에요. 제 말을 믿어도 좋습니다. 만약 평화주의자들로 가득찬 곳에서 그들이 전쟁에 대해 뭔가 강력한 흥미를 느낀다면 전쟁에 단련됐던 20살의 병사들도 마찬가지라고 저는 장담합니다. 그게 바로 풀어야 할 숙제라는 것입니다.

2:05 앞서 말했듯이 저는 20년간 전쟁을 취재해 왔습니다. 제가 겪은 전투 중 가장 강렬했던 것은 아프가니스탄에서 미군과 함께 했던 때입니다. 저는 90년대에는 아프리카에, 중동에 그리고 아프가니스탄에 있었지만, 정말 강렬한 전투를 경험했던 때는 2007년, 2008년 미군과 함께 했던 전투였습니다. 저는 아프카니스탄의 동쪽에 위치한 코렌갈이라는 작은 계곡에 있었습니다. 계곡은 6마일 정도의 길이였고 그곳에는 150명의 전투 중대가 주둔했었지요 그리고 제가 그곳에 있던 잠시 동안, 아프가니스탄 전지역을 통틀어 일어났던 모든 전투의 거의 20%가 바로 그곳에서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바로 그 6마일 안에서요. 150명의 용사들은 북대서양조약기구 (NATO)를 위해 전체 전투의 1/5을 겪어냈었습니다, 두달 동안에요. 정말 치열했습니다. 저는 대부분의 시간을 레스트레포라는 전초기지에서 보냈었습니다. 그곳은 2달전 배치되어 전사했던 소대 위생병의 이름을 따라 지어진 것입니다. 그것은 몇개의 합판으로 만들어져 산마루 한쪽에 매달린 B-막사였습니다. 그곳에는 모래 주머니와 벙커, 기관총들이 있었고, 위쪽으로는 전투 중대의 2소대원 20명이 있었습니다. 저는 대부분의 시간을 그 위에서 보냈었습니다. 그곳에는 수돗물도 없어서 몸을 씻을 수 없었습니다. 병사들은 그곳에 한번 올라갈 때마다 한달 씩 머물러야 했었습니다. 옷을 벗을 틈도 없이 그들은 싸우고 전투에 임했습니다. 똑같은 옷을 입고 잠을 잤고 절대 벗지않았어요, 그리고 한달이 다 되어서야 중대 본부로 내려올 수 있었습니다, 그때 쯤이면 입던 전투복은 해져 입지 못할 상태가 되어 태워버리고 새 전투복을 받습니다. 그곳에는 인터넷도 없었고 전화기는 물론이고, 바깥 세상과의 소통은 불가능했습니다. 조리된 음식도 없었고 일반 젊은이들이 좋아할만한 것들은 아무 것도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자동차, 여자, 텔레비전, 아무 것도 없었어요. 전투 빼고는요. 좋아하도록 길들여진 전투 말이에요.

4:03 저는 아주 더웠던 한 봄날을 기억합니다, 한 2주동안 전투는 없었던 것 같아요. 아마도요. 평소 같았으면 전초 기지는 공격을 받았을 텐데 2주동안 그 어떤 전투도 없었어요, 다들 지루함과 더위에 속수무책이었죠. 저는 제 앞을 지나던 한 중위를 기억합니다. 허리까지 옷을 벗은 상태였죠.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정말 정말 더웠습니다. 중위는 허리까지 옷을 벗은채 투덜거리며 제 앞을 지나갔었죠. "하늘이시여, 오늘 제발 누군가가 우리를 공격하게 해주세요." 그만큼 그들이 지루해 했다는 겁니다. 그게 바로 전쟁이기도 해요. 또 한 중위가 말했죠. "제발 뭐라도 일어나게 해주세요. 그렇지 않으면 미쳐버릴것 같아요."

4:45 그들의 행동을 이해하기 위해 여러분들은 잠시 동안 전투에 대해 생각해 보셔야 합니다, 도의적으로가 아닌 방식으로요. 물론 도의적인게 중요하지만 잠시 동안은 전투를 도덕과 연관지어 생각하지 말아보세요. 신경학적으로 생각해보세요. 여러분들이 전투 중에 있다면 머리속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날지 생각해 봅시다. 우선, 정말 특이한 경험일 거에요, 정말 흔치 않은 경험이죠.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경험일 겁니다. 대게, 사람들은 두려워하지 않아요. 전투 중에 있을 때 저는 무척 두려웠지만 막상 대부분의 시간을 그곳에서 보냈을 땐 두렵지 않았어요. 전투 전에는 정말 무서웠고 전투 후에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무서웠어요, 그리고 그 전쟁 후에 오는 공포는 수년까지 갈 수도 있죠. 저는 6년 동안 단 한번도 총에 맞지 않았는데도 오늘 아침에 항공 폭격을 당하는 악몽에 갑자기 잠에서 깨어났습니다, 6년이 지났는데 말이죠. 저는 실제로 단 한번도 폭격을 당한 적이 없었는데 이런 악몽을 꾸고 있었던 겁니다. 시간은 더디게 갑니다. 한번, 이 이상한 터널 시야 현상을 느껴보세요. 눈 앞의 정말 사소한 것에 몰입하면 다른 것들은 보지 못하게 됩니다. 이것은 거의, 약간 왜곡된 마음의 상태를 의미합니다. 그때 머리속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은 몸 속에 정말 엄청난 양의 아드레날린이 뿜어져 나오고 있다는거예요. 젊은 남자들은 이 같은 경험을 하기 위해 애씁니다 그것이 우리에게 달려들죠. 이건 호르몬상으로 증명이 됩니다. 사회에서 어린 남성들의 사망률은 여성의 6배입니다. 폭력이나, 사고에 의한 사망 탓이죠. 단순히 젊은 남자들이 하는 어리석은 짓들인: 뛰어 넘어서는 안되는 것들을 뛰어 넘는 행동, 불을 붙여서는 안되는 것들에 불을 붙이는 행동, 어떤 것들인지 아시겠죠? 이같은 경우로 죽는 것이 젊은 여성의 경우의 6배 입니다. 통계적으로, 10대 소년일 때는 소방서에 있거나, 대부분의 미국 도시에 있는 경찰서에 있다면 사고치기 위해 동네를 기웃거리는 것보다 안전합니다. 통계적으로요.

6:48 그런 것들이 전투에 어떻게 작용하는지 상상해보세요. 레스트레포에 있던 모든 병사들은 거의 전사했습니다, 저를 포함해서요, 저의 좋은 친구였던 팀 헤더링턴을 포함해서요, 그는 후에 리비아에서 전사했죠. 간발의 차이로 몸을 피한 그곳 병사들은 유니폼 천 위에 동그란 총알 구멍 자국을 남겨 다니곤 했었습니다.

7:10 어느 날 아침, 저는 샌드백에 몸을 기댄 채 있었습니다. 딱히 할 일도 없이 멍한 상태였는데 모래가 제 얼굴을 향해 흩뿌려지는 것이었습니다. 무엇인가가 제 얼굴 한 쪽을 쳤는데 그게 무엇이었는지 몰랐어요. 여러분께서는 총알이 소리보다 훨씬 빠르다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그래서 만약 누군가가 몇백 미터 거리에서 여러분을 향해 총을 쏘면 총알은 순식간에, 혹은 소리가 전달되기도 전에 여러분 곁을 비켜가거나 분명 총에 맞을 것입니다. 모래가 제 얼굴에 흩뿌려지는 것을 느꼈었고 곧바로 저는 더더더 하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그건 기관총 사격이었습니다. 그건 한시간 짜리 총격전의 1회전, 첫 한 바탕 사격이었습니다. 그 때 스쳐 지나갔던 것이 총알이었어요. 제 머리에서 3, 4인치 정도 떨어져서요. 상상해보세요. 제 목숨을 구해준 그 각도의 차이를 생각해보세요. 400미터에서 3인치 차이로 저를 비켜갔습니다. 수학적으로 생각해보세요. 그곳에 있던 모든 병사들은 그런 경험들을 가지고 있어요. 많이는 아니어도 적어도 한번씩은요.

8:15 그리고 그 병사들은 그곳에 일년 동안 있다가 귀향했습니다. 그들 중 몇몇은 제대 후, 집으로 돌아갔을때 엄청난 정신적 문제를 겪었습니다. 군대에 남은 몇몇은 거의 괜찮았습니다. 정신적으로요. 저는 특히 브랜단 오바이런이라는 사내와 친했지요. 여전히 좋은 친구이기도 하구요. 그는 미국으로 돌아와 군대를 나왔습니다. 하루는 디너 파티가 있었고 저는 그를 초대했습니다. 그는 제 친구 중 한 명인 한 여성과 얘기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녀는 전쟁에 참여하는게 얼마나 안 좋은 일인지 알고 있었기에 이렇게 물었습니다. "브랜단, 당신이 아프가니스탄에서 겪었던 것들 중 그리워 하는 것은 전혀 없나요? 전쟁에 대해서요?" 그러자 그는 꽤 오랫동안 생각을 하다가 마침내 이렇게 말했습니다. "부인, 저는 거의 모든 것이 그립습니다." 그는 제가 그 전쟁에서 본 최악의 정신적 외상을 입은 이들 중 한 명 이었습니다. "부인, 저는 거의 모든 것들이 다 그리워요."

9:14 그가 무슨 말을 한 걸까요? 그는 싸이코 패스가 아닙니다. 그는 사람 죽이는 것을 그리워 하는 게 아니에요. 그는 미치지도 않았어요. 총을 맞거나 동료들이 죽어 나가는 것을 지켜보는걸 그리워 하는게 아닙니다. 그렇다면 그가 그리워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우리는 그것을 찾아야합니다. 만약 우리가 전쟁을 막으려 한다면,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야 합니다.

9:37 저는 그가 정말로 그리워했던 것이 형제애였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점에서 그는, 살인과 반대되는 것을그리워했습니다. 그가 정말 그리워 했던 것은 함께 했던 동료들과의 관계입니다. 형제애는 우정과는 다른 개념입니다. 우정은 분명하게 사회에서 일어나는 것 입니다. 당신이 누군가를 더 좋아하면 할수록 당신은 그들을 위해 무엇이든 해주고 싶어합니다. 형제애는 당신이 다른 사람에 대해 어떻게 느끼는가와는 별개입니다. 형제애는 조직 내에서 자기 자신보다 조직의 안녕을, 조직의 모든 이들의 안전을 우선시하겠다는 상호간의 합의입니다. 사실, 사람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나 자신을 사랑하는 것 보다 이 사람들을 더 사랑한다."

10:23 브랜단은 3명의 병사를 이끄는 팀 리더였고, 아프가니스탄에서 최악의 날에는 그는 정말 수도 없이 죽을 고비를 넘겼습니다. 그는 개의치 않아했어요. 아프가니스탄에서 그에게 일어났던 최악의 일은 그가 이끌던 병사 중 한 명이 헬멧 위로 총을 맞고 쓰러졌을 때 입니다. 그들은 그가 죽었을 것이라 생각했었죠. 엄청난 총격전 중이었기 때문에 아무도 그를 돌볼 수가 없었는데, 카일 슈타이너는 말 그대로 죽은 몸이었다가 1분 뒤에 몸을 세워 앉는 것입니다 의식을 되찾은 덕분에요. 총알이 그냥 그를 기절시킨 것이었습니다. 그는 헬멧을 힐끗 내려다 봤어요. 반쯤 의식이 있는 상태였기에 그는 사람들의 대화를 기억할 수 있었습니다. "슈타이너가 머리에 맞았어, 죽었어." 그리고 그는 생각했었죠, "나는 죽지 않았어." 그리곤 바로 앉았습니다. 브랜단은 그 후 자신이 그들을 보호하지 못했다고 자책했고, 그것이 그가 아프가니스탄에서 딱 한번 울었을 때였습니다, 그것이 바로 형재애입니다.

11:21 형제애는 최근에 나온 말이 아니에요. 여기 많은 분들이 아마 "일리아드"를 읽어보셨을 것 같은데요. 아킬레스는 그의 친구인 파트로클로스를 구하기 위해 기꺼이 그의 목숨을 걸거나 목숨을 바쳤을 것입니다. 제 2차 세계 대전 중에 부상당한 병사들이 후방 기지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무단이탈을, 기어이 창문 밖으로 기어나오거나 문밖으로 빠져나와 부상을 입은 채로 무단이탈을 하여 전선으로 돌아간 병사들에 대한 많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형제들이 있는 최전선으로 돌아가기 위해서였죠. 이제 브랜단을 떠올려 보세요. 그 모든 병사들을요. 그런 유대의 경험을 가졌던 병사들을 생각해 보세요. 작은 조직 안에서 그들은 어떤 면에서 자신보다 20명의 동료들을 더 많이 사랑했습니다. 얼마나 훈훈했을지 상상해 보세요. 그들은 그런 경험으로 일년 동안 행복했었습니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들은 우리처럼 이제 막 사회로 돌아왔습니다. 누구를 믿고 의지해야 하는지 알지 못한 채, 누가 그들을 사랑하고 그들이 누구를 사랑할 수 있는지 알지 못한 채, 그들이 아는 누군가가 그들을 위해 무엇을 해줄지 알지 못한 채로요. 그건 정말 끔찍합니다. 그에 비하면, 어떤 점에서 전쟁은 심리적으로 수월합니다. 그런 종류의 소외감에 비해서는요. 그것이 그들이 전쟁을 그리워하는 이유입니다. 그리고 그게 바로 우리가 이해하고

12:53 어떻게, 우리 사회속에서 개선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

12:57 대단히 감사합니다. (박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