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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lated by Keewoo Lee
Reviewed by Sungmo Lee

0:11 당신은 어디서 오셨나요? 간단한 질문이지만, 요즘에는 간단한 질문들이 더 복잡한 답변을 가져옵니다.

0:20 사람들은 항상 저에게 어디서 왔냐고 물어봅니다. 제가 '인도'라고 답을 하길 기대하면서 말이죠. 저의 피와 선조들 100퍼센트가 인도에서 왔다는 것을 생각하면 그들의 생각은 맞습니다. 하지만, 저는 제 인생에서 단 한 번도 그곳에서 살아본 적이 없고 또, 인도의 2만 2천개의 방언 중 단 하나의 말도 구사하지 못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는 제가 스스로를 인도인이라고 부를 자격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만약 "어디서 왔나요?"라는 질문이 "어디서 태어났고, 길러졌고, 교육받았나요?"를 의미한다면 저의 대답은 작고 재미있는 나라, 영국입니다. 단지, 제가 학부 교육과정을 마치자 마자 영국을 떠난 것을 제외하면 말이죠. 그리고 제 학창 시절에 제가 교실에서 유일하게 교과서에 있는 영국의 영웅들과 비슷하게 생기지 않은 유일한 학생이었다는 것도 제외하면요. 그리고 만약 "어디서 왔나요"가 "어디에 세금을 내나요? 어디서 당신의 주치의와 치과의사를 보나요?"를 뜻한다면 저의 대답은 미국입니다. 제가 정말 어린 아이였을 때부터 지금까지 48년 동안이요. 하지만, 그 중 많은 시간동안 저는 제 얼굴에 초록색 선들이 그려진 작은 핑크색 카드를 가지고 다녀야 했습니다. 저를 영주권을 가진 이방인으로 인식하면서 말이죠. 거기에서 살면 살수록 더욱 이방인처럼 느껴집니다.

1:36 (웃음)

1:38 그리고 만약 "어디서 왔나요"가 "어느 장소가 당신의 가장 깊은 곳에서 흐르고 어디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려고 합니까?"를 뜻한다면 저의 대답은 일본입니다. 왜냐하면 저는 지금까지 25년동안 가능한 대부분의 시간을 일본에서 지내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모든 기간동안 저는 관광 비자로 머무르고 있고 많은 일본인들은 저를 그들 중 하나라고 생각하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2:01 저는 지금까지 이 모든 것을 저의 배경이 얼마나 옛날식이고, 간단한지 강조하기 위해 이야기 했습니다. 제가 홍콩, 시드니, 그리고 벤쿠버에서 만난 대부분의 아이들은 저보다 훨씬 국제적이고 다문화적입니다. 그들은 자신의 부모들과 관련된 하나의 나라, 그리고 그들의 배우자와 관련된 또 다른 나라, 그리고 지금 그들이 머무르고 있는 나라, 그리고 네번째로는 그들이 머무르고 싶은 꿈의 나라, 그리고 등등 더 많이 존재하죠. 그들의 인생 전체는 서로 다른 장소에서 온 다양한 조각들을 하나의 스테인드글라스로 만들어 내는 데에 사용될 것입니다. 그들에게 고향이라는 것은 하나의 진행중인 작품입니다. 그것은 마치 그들이 계속해서 추가하고, 개선하고, 고치고, 발전시키는 하나의 프로젝트와 같습니다.

2:50 그리고 우리 중 점점 늘어나는 사람들에게, 고향이라는 것은 하나의 땅조각이기 보다는 정신의 조각으로 인식되고 있습니다. 만약 저에게 갑자기 "고향이 어디세요?"라고 묻는다면, 저는 저의 사랑스러운 아내, 또는 가장 가까운 친구, 또는 제가 어디를 가든 함께 해준 노래들을 생각할 것입니다.

3:08 저는 항상 이렇게 느껴왔지만 진짜로 저의 고향이 되버렸죠. 몇년 전에 저는 캘리포니아에 위치하는 제 부모님의 집에서 계단을 올라가다가 거실 창문으로 밖을 봤는데 저희가 20미터 불꽃에 휩싸여 있음을 보았죠. 캘리포니아의 산들과 그 외 많은 곳들에서 주기적으로 일어나는 산불이었죠. 그리고 3시간 후에는, 저를 제외하고 집과 그 집안에 있었던 모든 것들을 재로 만들어 버렸죠. 다음날 아침에 일어났더니 저는 친구 집의 바닥에서 자고 있었고, 제가 세상에서 가지고 있는 것은 24시간 슈퍼마켓에서 산 칫솔 밖에 없었죠. 당연히, 그 때 누군가가 저에게 "당신의 집은 어디입니까?"라고 물어봤다면 저는 물리적인 건축물을 가리키지는 못했을 것입니다. 저의 집은 제가 항상 제 안에 가지고 다녔던 것이어야 했죠.

4:03 많은 방면으로, 저는 이것이 훌륭한 해방이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저의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태어났을 때는 그들은 고향, 공동체, 심지어 적대감 같은 것까지도 태어날 때에 부여됐습니다. 그리고 그것들을 벗어날 수 있는 기회를 가지기 어려웠죠. 요즘에는 적어도 우리 중 몇몇은 스스로의 고향을 정하고, 공동체라는 개념을 새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스스로의 생각을 변화시킴으로써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 세대의 흑인차별과 같은 생각에서 어느 정도 벗어날 수 있습니다. 지구에서 가장 힘이 센 나라의 대통령이 반은 케냐인이고, 한 때 인도네시아에서 자라기도 했으며, 중국-캐나다계의 처남을 갖고 있다는 것이 우연은 아닐 것입니다.

4:45 자신이 태어난 곳에서 살고 있지 않은 사람들이 이제 2억 2천만명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상상하지 힘든 숫자이지만, 이것은 캐나다의 총 인구와 호주의 총 인구 그리고 다시 호주의 총 인구 다시 캐나다의 인구를 더하고 이것을 두배를 한다고 해도, 그 떠돌아다니는 집단보다도 적은 수일 것입니다. 그리고 구식의 국가 구분에서 벗어나 다른 나라에서 사는 사람들의 수는 매우 빨리 늘어나고 있습니다. 지난 12년간 6천 4백만 명이 늘었죠. 얼마 지나지 않아, 저와 같은 사람들이 미국인들보다 더 많아질 것입니다. 벌써 세계에서 5번째로 인구가 많은 나라로 비유될 정도죠. 사실, 캐나다의 가장 큰 도시인 토론토에 사는 대부분은 전혀 다른 나라에서 온 사람들을 일컫었던 이방인입니다.

5:41 저는 이방인들에게 둘러싸여 있는 것의 장점이 스스로를 일깨워 준다는 것이라고 느껴왔습니다. 어떠한 것도 당연하게 여길 수 없습니다. 여행은 저에게 사랑에 빠지는 것과 비슷합니다. 왜냐하면 갑자기 자신의 모든 감각이 작동하기 시작하거든요. 사람들은 세계의 비밀스런 패턴을 갑자기 알게 되죠. 마르셀 프루스트가 말했듯이, 여행은 새로운 것을 보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눈으로 보는 것입니다. 그리고 당연히도, 새로운 눈으로는 옛 것, 심지어 여러분의 집도 새롭게 보이게 됩니다.

6:16 자신의 나라에서 살고 있지 않은 사람들 중 다수는 자신의 고향을 떠나고 싶어하지 않고 향수병을 앓던 망명자들입니다. 하지만 우리들 중 운이 좋은 사람들에게는 이런 이동의 시대가 신나는 새로운 가능성을 가져올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여행할 때에, 특히 세계적인 도시라면, 제가 만난 어떤 사람이 파리에 살고 있는 반 한국인, 반 독일인인 젊은 여성이라고 합시다. 그녀가 반 태국인, 반 캐나다인인 에든버러에서 온 젊은 남자를 만난다면, 그녀는 그를 친척으로 인식할 것입니다. 그녀는 한국인이나 독일인보다 그에게서 공통점을 더 많이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게 그들은 친구가 되고, 사랑에 빠집니다. 그들은 뉴욕으로 이사를 가게 되고요. (웃음) 또는 에든버러로요. 그리고 그들 사이에서 태어난 작은 여자 아이는 당연하게도 한국인이나, 독일인, 프랑스인, 태국인, 스코틀랜드인, 캐나다인, 혹은 미국인이 아닌 이런 지역들의, 계속해서 진화하는 하나의 아름다운 혼합체입니다. 그리고 어쩌면, 그 젊은 여성이 세상에 대해 꿈을 꾸는 방식, 글을 적는 방식, 생각하는 방식은 지금까지의 것들과 뭔가 다를 수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지금까지는 없었던 새로운 문화들의 혼합에서 비롯된 것이니까요. "여러분이 어디서 왔느냐"는 "어디로 가고 있느냐"보다 훨씬 중요하지 않습니다.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과거가 아닌 미래와 현재에 뿌리내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고향은, 우리가 알고 있듯이 단순히 여러분이 태어난 곳이 아닙니다. 그곳은 여러분이 자신이 된 곳입니다.

7:57 하지만 이런 이동에는 하나의 큰 문제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비행기 안에서 출산을 하기가 매우 어렵다는 것입니다. 몇 년전에, 저는 제가 유나이티드에어라인 항공사에서만 백만마일을 모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모두 이 말도 안되는 시스템을 알고 있죠. 6일을 지옥에서 보내면 7번째 날은 공짜로 얻게 되죠.

8:20 (웃음)

8:23 그리고 저는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가만히 있는 것도 돌아다니는 것만큼 좋은 것이라고 말이죠. 새로운 관점을 얻을 수 있다는 점에서요.

8:33 그리고 저의 집이 타서 사라진지 8개월 후에 저는 근처 고등학교에서 가르치고 있는 친구에게 찾아갔죠. 그는 "너에게 딱 맞는 곳을 알고 있어"라고 했습니다.

8:42 "정말?" 저는 말했습니다. 저는 사람들이 그런 말을 하면 항상 잘 믿지 않죠.

8:45 "솔직히 말하면, 아니야" 그는 계속했죠. "차로 3시간 거리고, 많이 비싸지도 않아, 그리고 이전에 너가 머물러 본 곳들과는 다를 거야"

8:54 "음." 저는 살짝 궁금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어딘데?"

8:58 "음-" 여기서 제 친구는 헛기침하고 머뭇거렸죠. "음, 카톨릭 은신처야."

9:04 이것은 잘못된 답이었습니다. 저는 15년를 성공회 학교에서 보냈습니다. 그래서 저는 한평생을 쓸 찬송가집과 십자가들이 있죠. 사실 여러 평생을 써도 모자라지 않을 만큼이요. 하지만 제 친구는 자신이 카톨릭 신자가 아니라고 했고 자신의 대부분의 학생들도 마찬가지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그의 학생들을 매 해 봄마다 그곳으로 데려갔다고 합니다. 그럴 때마다, 심지어 가장 산만하고, 가만히 있지 못하는, 테스토스테론 분비가 왕성한 15살 캘리포니아 소년도 3일 동안을 침묵에서 지냈어야 했다고요. 그리고 그 안에 있던 무언가가 가라 앉았고 정리됐다고 했습니다. 그 소년은 스스로를 찾게 된 것이죠.

9:41 그리고 저는 생각했습니다. "15살 짜리 아이에게 통한다면 아마 나에게도 통하겠지" 그래서 저는 차에 타서 해안가를 따라 3시간동안 북쪽으로 운전했습니다. 도로는 점점 조용해지고 좁아졌습니다. 그리고 저는 2마일동안 더 좁고 포장도 거의 되어있지 않는 구불구불한 길을 따라 산 꼭대기까지 운전하며 올라갔습니다. 제가 차에서 내렸을 때에 공기가 고동치고 잇었습니다. 그 공간은 완벽히 침묵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침묵은 소리의 부재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일종의 기운 또는 에너지 였습니다. 제 발바닥 및에는 거대하고 고요한 푸른 태평양이 있었습니다. 저의 주위에는 800에이커의 야생 풀들이 펼쳐져 있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제가 자게될 방에 갔습니다. 작지만 대단히 편안했죠. 침대 하나와 흔들 의자 하나, 긴 책상 하나, 그리고 더 긴 창문이 있었습니다. 밖에는 작고 개인적인 벽으로 둘러쌓인 정원과 바다까지 이어지는 1200피트 금빛 팜파스 그래스가 있었죠. 저는 앉아서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쓰고, 또 썼습니다. 제 책상에서 벗어나기 위해 간 것인데도 말이죠.

10:55 제가 일어날 때에는, 4시간이 지났습니다. 밤이 되었고, 저는 소금뿌리개를 뒤집어 놓은 듯한 별들 아래를 걸어다녔고 남쪽으로 12마일 떨어진 돌출부에서 사라져 가는 차들의 후미등을 볼 수 있었죠. 마치 지금까지의 저의 모든 걱정들이 사라지는 것 같았어요.

11:19 다음날, 전화기, 텔리비젼, 노트북이 없는 채로 제가 일어났을 때에는 마치 하루가 1,000시간 처럼 느껴졌죠. 그것은 제가 여행을 할때에 느꼈던 자유와 같았죠. 하지만 그것은 심오하게도 집에 온것 같은 느낌을 줬습니다.

11:37 저는 종교적인 사람이 아니라서 예배를 가지는 않았습니다. 저는 수도승에게 물어보지 않고 그저 수도원 도로를 따라 산책을 하고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엽서를 보냈습니다. 구름을 바라보았고 평소에는 하기 가장 힘들었던 일을 했습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죠.

11:56 저는 되돌아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제가 가장 중요한 일을 그 곳에서 하고 있음을 눈치 챘습니다. 저도 모르게, 단지 가만히 앉아 있는 것만으로 이메일과 약속들에 쫓겨 다닐 때에는 할 수 없었던 방식으로 나에게 가장 중요한 결정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12:13 그리고 저는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저 안에 있는 어떤 것은 계속해서 정적과 머무름을 위해 소리쳤지만 제가 계속해서 달렸기 때문에 그의 외침을 들을 수 없었다고요. 저는 마치 스스로 안대를 쓰고 앞이 보인지 않는다고 투정부리는 미친 사람과 같았습니다. 그리고 저는 세네카의 한 소년에게 배운 멋진 구절을 기억했습니다. "적은 것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가난한 것이 아니라 많은 것을 원하는 사람이 가난한 것이다."

12:41 그리고, 당연히, 저는 여러분에게 수도원에 들어가라고 제안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것은 요점이 아니죠. 하지만 어디로 갈지 보기 위해서는 잠시 멈춰야한다고 생각합니다. 당신의 삶에서, 당신이 볼 수 있는 세상에서, 당신이 지금 가장 신경쓰고 있는 것들에서 잠시 나와봐야 합니다. 그리고 집을 찾아야 합니다. 그리고 저는 현재 많은 사람들이 매일 아침마다 방구석에서 그들의 전자 기계없이 조용히 30분동안 앉아서 생각을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혹은 매 저녁마다 달리기를 하거나 혹은 친구와 긴 대화를 하러 갈 때에 핸드폰을 놔두고 나가면서 말이죠.

13:20 이동은 훌륭한 특권입니다. 할아버지 할머니는 꿈꾸지도 못했던 것들을 우리에게 가능하게 합니다. 하지만 궁극적으로, 이동은 여러분이 돌아갈 집이 있을 때에만 의미가 잇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집은 당연히도 여러분이 단순히 잠을 자는 공간이 아닙니다. 그것은 당신이 서 있는 공간입니다.

13:44 감사합니다.

13:45 (박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