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 지에 대해서 관심이 많았습니다. 저는 이해할 수 가 없었습니다. 굶주림이라던지, 살상이라던지, 또 무고한 사람들을 죽이는 행위에 대해서 말이죠. 이러한 일들을 받아들이기란 굉장히 어려운 일입니다. 제가 12살이 되었을때, 배우가 되었습니다. 당시 저는 반에서 꼴찌였고, 그래서 어떤 자격도 없었습니다. 난독증도 앓고 있었죠. 그런데 사실 전, 자격이 있었는지도모릅니다. 도자기 수업에서 D를 받았기 때문이죠. 제가 학점을 받을 수 있었던 유일한 과목이었습니다. 사실 전혀 쓸모없었던 학점이었지만요. (반어적 의미) 이렇듯 자격도 없었던 저였지만 평화에 대한 관심이 이 모든 것을 시작하게 해주었습니다. 그 이후에 배우의 삶을 살면서, 여러가지 다른 일들에도 손을 댔었죠. 제가 하고 있던 여러가지일에 부족함을 느꼈고, 뭔가 해야만 하는 일이 더 있을거라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바로 그 때에, Frank Barnaby의 책을 읽게 된 것입니다. 훌륭한 핵 물리학자였던 이 분은, 미디어가 책임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사회의 모든 분야가 무언가를 시도하고 과정을 밟고 전진해나가는 것에 책임이 있다고 하셨죠. 바로 이 사실에 저는 매료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일생의 대부분을 카메라를 들고 빈둥거렸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어쩌면 내가 뭔가 할 수 있지 않을까, 영화제작자가 될 수도 있고, 아니면 영화라는 형태를 건설적으로 이용해서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어떤 방식으로 쓸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어쩌면 내가 작은 변화를 일으킬 수도 있겠어, 라고 말이죠. 이를 계기로 평화에 대해 생각해보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제가 여러분께 말씀드렸던 것 처럼, 이 사진들을 보고 너무나 마음이 아팠습니다. 이런 상황을 납득해보려고 노력했죠. 연륜이 있고 현명한 분들을 찾아가 어떻게 지금도 버젓이 일어나고 있는 이런 일들을 받아들이고 있는건지 답해 줄 수 있을까 하고 생각했습니다. 왜냐하면 이러한 상황들이 너무나도 놀라웠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전, 배우라는 자격으로 빈둥대며 다니면서 인상적인 말만 하는 건 충분치 않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넘어야 할 산이 있었고, 제가 반드시 나서야 할 여정이 있었습니다. 제가 만약 그 여정을 시작만한다면, 실패든 성공이든, 결과는 전혀 중요치않을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제가 무언가 이러한 질문에 대한 답을 찾을 가능성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인간은 근본적으로 악한 존재인가? 세계에서 자행되고 있는 살상이 불가피한 행위인가? 이런 곳에서 아이를 키워도 되는 것일까? 아이를 키우는 건 책임감있는 행동일까? 등등에 대해서 말이죠.
그래서 평화에 대해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과연 어디가 평화의 시작점일까 생각해봤습니다. 바로 이 때가 제가 이 아이디어를 갖게 된 순간이었습니다. 평화의 시작점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전세계가 하나가 되는 날도 없습니다. 여러 문화가 함께하는 날도 없습니다. 인류애가 다같이 모이는 날도 없습니다. 각자가 다 다르지만 모두 다 함께 공유한다면, 그리고 우리가 합동해서 서로 문화적으로 협력하면, 바로 이것이 인류가 살아남는 열쇠가 될 것 입니다. 또한 이것이 인류가 직면하고 있는 기본적인 의문에 대한 우리의 의식 수준을 바꾸어줄 것입니다. 만약 우리가 하루만이라도 그렇게 보낸다면 말이죠.
하지만 당시 저와 제 동료는 돈이 한푼도 없었습니다. 심지어 저는 어머니 집에 얹혀살고 있었죠. 그래서 저희는 사람들에게 편지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면서 무엇을 해야하는지 재빨리 깨달았습니다. 세계 각국의 모든 대통령들이 지지하는 최초의 휴전과 비폭력의 날을 9월 21일로 어떻게 정할지 방법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제가 9월 21일로 정하고 싶었던 이유는 저희 할아버지께서 가장 좋아하셨던 숫자였기 때문입니다. 할아버지께선 전쟁 포로셨습니다. 나가사키에 폭탄이 떨어지는 걸 목격하셨었죠. 결국 독성이 혈관에 퍼졌고 제가 11살때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할아버진 제 영웅이셨습니다. 할아버지께서 21을 좋아하셨던 이유는 당시 700명이 떠나 23명이 돌아오던 중, 선박에서 두명이 죽고 21명만이 살아돌아왔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것이 우리가 9월 21일로 지정하고 싶은 이유입니다.
그렇게 우리는 여정을 시작했습니다. 1999년 첫 시작을 알렸습니다. 그리고 각국의 대통령과 외교관, 노벨상 수상자와 NGO(비정부 기관), 종교인, 그리고 다양한 협회, 즉 거의 모든사람들에게 직접 손으로 쓴 편지를 보냈습니다. 이 중 일부는 신속하게 답변을 보내왔습니다. 그리고 저희는 계획을 실행하기 시작했습니다. 아직도 첫번째 답장이 기억납니다. 답장들 중 하나는 달라이 라마에게서 온 것이었죠. 물론 당시 우리는 자금이 없었기때문에 기타를 연주해서 편지에 붙일 우표 값을 벌었습니다. 달라이 라마(Dalai Lama)에게서 온 편지엔 이렇게 써있었습니다. "정말 대단한 계획입니다. 오셔서 만나뵙기를 바랍니다. 여러분께 평화의 날을 시작하는 첫날에 대해서 얘기를 나누고 싶군요." 우리는 비행기 표를 살 만한 돈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당시 영국항공의 회장이었던 밥 에일링(Bob Ayling)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죠. "회장님, 저희는 달라이 라마의 초대를 받았습니다. 비행기 티켓을 제공해주실 수 있으십니까? 그 분을 만나뵈러가야 합니다." 물론, 우린 비행기를 타고 건너가 그를 만날 수 있었고 이는 경탄할 만한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오스카 아리아스(Oscar Arias) 박사님이 다음으로 손길을 내미셨습니다.
다시 한번 그 슬라이드를 볼까요. 1999년에 바로 비폭력과 휴전의 날을 만들자는 아이디어를 내놓은 날 우리는 대략 천 명을 초대했습니다. 사실, 천명 까지는 아니고 백여명정도를 초청했죠. 꽤나 많은 수였습니다. 모든 언론사도 초대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바로 세계 평화의 날이라는 아이디어를 처음으로 선보였기때문입니다. 모든 이들을 초대했지만, 어떤 언론사측에서도 오지 않았습니다. 당시 114명이 모였었는데 대개 친구나 가족들이었습니다. 대수롭지 않은 것을 발표하는 날같았죠. 하지만 별로 상관없었습니다. 이 상황을 기록했고, 그것이 중요했기 때문입니다. 저에게는, 과정이 중요했습니다. 결과는 중요치 않았습니다. 바로 이것이 카메라가 아름다운 이유입니다. 사람들은 펜이 칼보다 강하다고 하지만 제 생각엔 카메라가 더 강하다고 봅니다. 아름다움이 있는 그 순간에 머무를 수 있고, 실제로 힘을 가질 수 있게해주기 때문입니다.
아무튼, 우리는 여정을 시작했습니다. 여기 보시는 메리 로빈슨(Mary Robinson)과 같은 사람들을 만나기위해 제네바로 떠났습니다. 머리도 잘랐죠. 길고 짧고를 왔다갔다 했는데, 그 이유는 코피 아난(Kofi Annan)을 만날 때마다, 저를 히피족이라고 생각할까봐 걱정됐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잘랐죠. 그래서 그렇게 된 거랍니다. (웃음) 네, 물론 지금은 걱정없습니다. 메리 로빈슨은, 저에게 이렇게 말했죠. "이 아이디어가 활약을 할 시대가 왔군요. 반드시 실행되어야만 합니다." 코피 아난은 "저의 군대에 이득이 되겠군요"라고 말했습니다. 당시 살림 아메드 살림(Salim Ahmed Alim)은 OAU(아프리카 통합 기구)를 이끌었는데, "제가 반드시 아프리가 국가들을 참여시키겠습니다."라고 답했습니다. 그리고 노벨 평화상 수상자인 오스카 아리아스 박사는, 현재 코스타 리카의 대통령직을 수행하고 있으며,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모두 하겠습니다" 라고 답했죠. 그리고 저는 아랍연맹의 아무르 무사(Amr Moussa)를 만나러 갔습니다. 그리고 아루샤 평화 회담에서 만델라(Mandela)도 만났죠. 그리고 또 만남과 만남을 반복했습니다. 제가 이 일을 추진하면서 이 아이디어가 실현될 수 있는 생각이라는 사실을 입증하기 위해서 였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귀를 기울였습니다. 또 각지에서 영상을 찍었습니다. 지난 12년간 76개국을 방문했습니다. 그리고 어디를 방문하든 항상 여성과 아이들과 얘기를 나누었습니다. 저는 4만4000명의 젊은이들을 찍었습니다. 그들의 생각을 900시간동안 담았죠. 저는 젊은이들이 어떻게 생각할지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이러한 생각에 대해서 그들에게 말해 줄 때 말이죠. 더욱 평화로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 이들이 시작할 수 있는 일은 시와, 예술과, 문학, 또 음악과, 스포츠, 뭐가 됐든 이러한 수단을 통해서 가능하다는 것이었죠. 그리고 모든 사람들에게 귀를 기울였습니다.
유엔과 함께할 수 있었던 것은 믿을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또 NGO와 이 과정을 함께 밟아나가는 것도 놀라웠죠. 저는 이 날을 시작하는 것이 국제 사회를 대신해서 하고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아이디어를 견고히하고 구체화시킬수록, 이 날을 시작하기 위한 더 좋은 기회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바로 이런 것입니다. 초기단계에 있었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나더라도 개의치않을거라고 생각했습니다. 만약 평화의 날을 시작하지 못했더라도 상관없었습니다. 요지는 이겁니다. 만약 제가 시도를 했는데 효과가 없었다면, 저는 이런 얘기를 할 수 있었겠죠. 얼마나 국제 사회가 협력하지 않고 있는지에 대해서 말입니다. 바로 소말리아에서 한 어린 소녀를 안아 올리기 전까진 그랬죠. 이 어린 아이는 다리에 약 1인치 반정도 살점을 소독제가 없는 상태에서 떼어내야했고, 소년병이었던 이 소년은, 저에게 사람을 죽여봤다고 하더군요. 이 아이는 겨우 12살이었습니다. 이러한 사실들이 절 일깨워주었습니다. 제가 도저히 그만둘 수 없는 영화를 찍고있다는 것을 말이죠. 그리고 실제로, 그 순간 저에게 어떤 일이 벌어졌습니다. 사실상 제가 "찍어야겠어. 이게 내가 만들 수 있는 단 한 작품이라면, 이게 현실이 될수있을 때까지 찍어야겠어' 라고 생각하게 만들어준 사건이죠. 왜냐하면 우리는 여기서 멈추고 해결책을 찾아야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함께 힘을 합치고 모든 정치와 종교에서 벗어나서 말이죠. 한 젊은이로써, 바로 이 생각이 절 혼란스럽게 만들었습니다. 왜냐하면 어떻게 이 과정을 밟아나갈 수 있을지 몰랐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9월 7일, 저는 뉴욕으로부터 초청을 받았습니다. 코스타 리카 정부와 영국 정부는 유엔총회와, 54개의 공동 스폰서에게 제안을 했습니다. 최초로 시작하는 비폭력의 날을 9월 21일로 고정시키자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날은 세계 각국의 대통령들이 만장일치로 승인했습니다. (박수) 네, 하지만 이 날이 현실로 이뤄지기까지 수백명의 개개인들의 노력이 있었습니다. 이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이는 정말 위대한 순간 이었습니다. 저는 총회의 맨 위에 서서 아래를 내려다보며 승인되는 것을 바라보았죠. 제가 언급했다시피, 처음 시작할 당시, 우리는 Globe(런던 소재 원형 극장)에 모였었고, 그 어떤 언론사도 오지않았습니다. 이제 저는 이런 생각을 합니다. "언론에서 당연히 알게되겠지" 그리고 순식간에, 우리는 이 날을 제도화하기 시작했습니다.
9월 11일 아침, 저는 코피아난의 초대를 받았습니다. 기자회견을 위해서였죠. 제가 도착했을 때가 아침 8시였습니다. 저는 코피아난이 내려오길 기다렸고, 오는 중이라는 것을 알고있었죠. 그런데 그는 아예 오지 않았습니다. 기자회견은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세계에 휴전과 비폭력의 날의 존재를 알리지 못한 것입니다. 정말 비극적인 순간이었죠. 목숨을 잃은 수천명의 사람들에게, 그 곳에 있었던, 또 전세계 사람들에게도 말이죠. 평화의 날은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이런 생각을 했던 것이 기억나네요, "바로 이런 현실이 왜 우리가 더 열심히 나아가야하는지를 보여주는거야. 이 날이 효력을 발휘하도록 만들어야해. 이미 날은 만들어졌지만 아무도 모르는게 현실이야. 그래도 우린 반드시 이 여정을 계속해야해, 그리고 사람들에게 전해야해, 그리고 이 날의 진가를 입증해보이겠어." 라고 생각했죠.
두려움 속에서 뉴욕을 떠났지만, 사실 큰 용기를 얻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실패로 인해 자극을 받았습니다. 만약 바로 성공했더라면, 아마 이런 느낌을 받지 못했을 겁니다. 이런 감정을 영화에 쏟아넣고 비평가들에게 달려갔습니다. 그리고 이 영화를 보여주었습니다. 이스라엘에 있으면서 이 영화는 완전히 짓밟혀졌습니다. 이것을 본 일부 사람들에 의해서였죠. 그들은 단지 평화의 날을 말하고 있을 뿐, 아무 뜻도 없다고 했습니다. 평화의 날은 효과도 없을 것이고, 당신도 아프가니스탄 내의 전쟁을 막지 못할것이며 탈레반은 아예 듣지도 않을거야, 라며 그냥 상징적인 날일 뿐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생각은 여러 면에서 봤을때 9.11사태보다 더 심각한 일이었습니다. 왜냐하면 분명 효과가 나타날 것이기 때문이었죠. 저는 소말리아와 부룬디, 가자지구와 서안지구에도 뜻을 전했습니다. 인디아와 스리랑카, 콩고, 어디가 됐든, 모두들 저에게 이렇게 얘기했죠. "만약 당신이 기회를 만들어준다면, 우리는 도움을 줄것이고, 아이들의 예방접종도 할 수 있을 겁니다. 아이들은 자신들의 삶을 이끌어 나갈 수 있습니다. 함께 뭉칠 수 있고 함께 할 수 있습니다. 만약 사람들이 악행을 그만둔다면, 생명을 구할 수 있을 것입니다." 바로 이 말이 제가 들은 말이었습니다. 그리고 갈등이 뭔지 진정으로 이해하고 있는 사람들에게서 이런 말을 들었죠.
그리고 저는 유엔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계속해서 영상을 찍고 또 다른 영화를 제작하리라 결정했죠. 유엔으로 돌아와서 몇년을 보냈습니다. 우리는 유엔의 복도를 바쁘게 돌아다니고, 정부와 NGO에서 활동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을 열성적으로 찾았습니다. 앞으로 나와 실행에 옮길 인물들을 찾았죠. 우리가 현실화 시킬 수 있는지를 확인하고싶었습니다. 사실상 수없이 많은 미팅이 진행되고 난 후에 저는 아마드 파우지(Ahmad Fawzi)로 인해 기쁨을 만끽했습니다. 그는 제 영웅이자 멘토인 분 중 한 분이었고, 유니세프가 도움을 줄 수 있도록 해주셨기 때문입니다. 너무나도 감사하게 유니세프는, "좋습니다. 함께 해보죠." 라고 답했습니다. UNAMA(유엔 아프가니스탄 지원 단체)도 아프가니스탄의 문제를 함께 하기로 했죠. 역사적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아프가니스탄에서 과연 UNAMA 와 WHO(세계보건기구) 그리고 시민 단체와 함께 실현할 수 있을까? 저는 이 모든 일을 영화에 담았고 기록했습니다. 그리고 생각했죠. "바로 이거야. 현실로 될 수 있는 가능성이 있어. 실패한다해도, 적어도 문은 열려있고 기회도 잡을 수 있을거야."
그리고 런던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리고 이 친구를 만났죠. 바로 쥬드 로(Jude Law)입니다. 제가 그를 만난 것은 그도 배우였고 저 또한 배우였으며 그와 친분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언론에 알려야했고 또한 그러한 관심이 필요했습니다, 미디어가 끌어들여야할 필요가 있었죠. 만약 우리가 이를 퍼뜨리기 시작한다면 아마도 더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기울일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고 아마도 더 많은, 우리가 어떤 곳에 도달했을때 어쩌면 더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질 수도 있었고 또 재정적으로 조금 더 도움을 받을만한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실 굉장히 재정적으로 힘들었었죠. 더 이상 언급하진 않겠습니다만. 아무튼 쥬드 로가 말하길, "좋아, 내가 몇마디 해줄께."
제가 그 영상들을 찍고 있을 때, 그가 묻더군요. "다음엔 어디로 갈거야?" 저는 대답했죠. "다음엔 아프가니스탄으로 갈거야." 그는 "진짜?" 저는 그의 눈빛에서 흥미를 느낀다는 것을 눈치챌 수 있었죠. 그래서 물어봤죠. "나랑 같이 갈래? 만약 너도 같이 간다면 정말 좋을거야. 도움도 되고 관심도 끌 수 있을텐데. 그리고 그렇게 관심을 끌면 지금 상황에 탄력을 줄 수 도 있고 다른 여러 면에서도 좋은 영향을 줄 수 있을거야." 저는 성공에 많은 요소들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중 하나는 현명한 아이디어를 가져야한다는 것입니다. 또 다른 요소는 지지층을 얻고 재정적인 도움을 받는 것이며, 또한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실제로 제가 어떤 성과를 올렸던 간에 널리 퍼뜨리는 일을 혼자서는 할 수 없었습니다. 그렇게 때문에 이러한 지지세력이 굉장히 중요한 것입니다. 그는 승낙했습니다. 그리고 아프가니스탄에도 같이 가게되었습니다.
우리가 그 곳에 간 사실은 정말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저는 다양한 사람들과 대화를 나눴고 그들은 저에게 이런 말을 했죠, "당신은 이 곳에 있는 모든 이들이 참여하도록 만들어야 합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이뤄지길 바라면 안됩니다. 나가서 행동으로 옮겨야합니다." 우린 그렇게 했고, 세계를 돌면서, 연륜이 있는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고, 의사와 간호사와 얘기를 나눴습니다. 우리는 기자회견을 마련했고, 군인들과 함께 시간을 보냈고, ISAF(국제 안보 지원군)와 NATO(북대서양 조약기구)와 만남을 가졌습니다. 또한 영국 정부와도 회담을 가졌습니다. 결국, 우리가 거의 모든 사람들과 소통을 한 것입니다. 학교내외에서 교육부 장관들과 함께, 기자회견을 열었습니다. 물론 수많은 언론을 포함한 모든 사람들이 참석했습니다. 무슨 일이 진행이 되고 있는지 관심이 쏠렸던 것이죠. 이 대단한 여성은, 파티마 마가라니(Fatima Magalani)입니다. 그녀는 일이 진행되는데에 있어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바로 러시아 레지스탕스의 대변인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녀의 아프가니스탄 내에서의 인맥은 거의 모든 지역을 아울렀습니다. 그녀는 저희의 메세지를 전달하는데에 있어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그리고나서 우리는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말하자면 임무를 완수했던 것이죠. 이제 기다리면서 어떤 일이 벌어질지 지켜볼 차례 였습니다. 집에 오고나서, 저에게 편지를 전해받았던 것을 기억했죠. 탈레반에서 온 편지였습니다. 그 편지에 이렇게 써있었습니다, "우리는 이 날을 지켜볼 것입니다. 우리는 이 날을 주목할 것입니다. 우리는 이 날을 기회의 장으로 보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개입하지 않을 것입니다. 개입은 절대 없을 것입니다." 그 말인 즉슨 인도주의자들을 납치하거나 사살하지는 않겠다는 뜻이었습니다. 그리고나서 순식간에, 그 순간 명백한 사실을 깨달았죠. 가능성이 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몇 일 후, 160만명의 아이들이 소아마비 백신을 맞게되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폭력을 멈춘 결과였습니다. (박수) 그리고 유엔총회에서 느꼈던 것처럼, 가장 아름다운, 정말 너무나 아름다운 순간이었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영화를 마무리 짓고 한편으로 만들었습니다. 다시 돌아가야만 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다리와 파시토 그리고 다른 지역 방언들도 넣었죠. 그리고 아프가니스탄으로 돌아왔습니다. 다음해가 다가오고 있었고, 아프가니스탄을 지원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가 돌아오고 싶어했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아프가니스탄에서 도움을 준 이 모든 사람들이 영웅이었기 때문이죠. 이들은 평화를 믿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리고 평화에 대한 가능성을 믿는 사람들이었죠. 그리고 실제로 이들은 현실로 이뤄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돌아와서 영화를 그들에게 보여주고 이렇게 말하고 싶었습니다, "보십시오, 여러분들께서 이를 가능하게 만든것입니다. 너무나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이 영화를 전했죠. 영화가 상영되었고, 정말 감동적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해에, 바로 2008년에, 아프가니스탄 카불에서 9월 17일, ISAF측 발표에서 "스탠리 맥그리스탈(Stanley McChrystal)사령관, 즉 아프가니스탄의 국제안보지원 사령관은, ISAF에서 어떤 공격적인 군사활동도 오늘 9월21일에는 실행하지 않을 것을 선언합니다." 그들은 군사훈련을 중단하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나서 또 다른 발표가 있었습니다. 바로 안전 보장 이사회로부터 나온 것이었죠. 아프가니스탄에서, 이 날로 인해, 폭력이 70퍼센트나 떨어졌다는 것입니다. 적어도 이 날만큼은 폭력행위가 70퍼센트 떨어진 것입니다. 이 사실은 저를 너무나 놀라게 만들었죠. 그 어떤 것보다 말이죠.
당시 저는 뉴욕에 화산으로 인해 묶여 있었는데, 화산은 사실 그렇게 위험한 것은 아니지만요. 당시 아프가니스탄에서 어떤 일이 벌어진 건지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계속 그 70퍼센트를 생각했죠. 폭력행위가 70퍼센트나 감소했다는 사실은, 모든사람들이 이건 완전히 말이 안된다고 당신은 절대 그렇게 할수 없다고 말해왔던 것이었죠. 그리고 이 사실이 제가 이런 생각을 하게 만들었습니다, 만약 우리가 아프가니스탄에서 70퍼센트를 감소시켰다면, 확신컨데 다른 모든 곳에서도 70퍼센트의 감소를 얻어낼수 있을 것이라는 사실이었죠, 우리는 전 세계적으로 전쟁을 멈춰야만 했습니다. 우리는 휴전과 비폭력의 날을 활용해야했습니다. 그리고 전세계의 정전을 이뤄내야했죠. 정전을 세계적인 규모로 이뤄내야 했습니다. 전례없는 규모로, 국내외에서 말이죠.
바로 이것이 우리가 해야만 하는 일이었습니다. 올해 9월 21일에, 우리는 이 운동을 02 아레나(대형 경기장)에서 시행하고자했습니다. 이러한 과정을 진행시키기위해서였고 또한 대규모의 정전을 이루어내기 위해서였습니다. 우리는 이 모든 것을 활용할 것입니다. 춤이나 소셜 미디어나 페이스 북이나 웹사이트를 방문하거나 청원서에 서명을 하는 것을 포함해서 말입니다. 그리고 평화의 날은 유엔국의 6가지 공식 언어로 진행됩니다. 또한 우리는 정부와 , 정부 부속 단체들과 국제적으로 협력할 것이며, 비정부단체와, 교육, 여러 연합들, 스포츠도 포함될 것입니다. 그림에서 교육이라는 네모칸이 보이시죠. 우리는 당시 174개국에서 원조를 받고있었습니다. 젊은이들이 원동력이 될 수 있도록 노력했습니다. 바로 세계적인 정전이라는 비젼을 위해서 였죠. 그리고 실제로 생명을 구하는 비율이 늘어났습니다. 이러한 개념이 도움이 된것이죠.
그리고 올림픽과도 연계했습니다. 저는 셉 코(Seb Coe)를 만나러 갔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전했습니다,"2012 런던 올림픽은 정전에 대한 것입니다. 궁극적으로, 정전과 관련된 것입니다." 함께 해보시지 않겠습니까? 정전을 현실화 시켜보는 것이 어떨런지요? 대대적으로, 세계적으로 전쟁을 막기 위한 지원을 해주시지 않겠습니까? 우리는 이 과정에 대해 새로운 영화를 찍을 것입니다. 우리는 스포츠와 축구를 활용할 것입니다. 평화의 날에, 쳔여개의 축구 시합이 펼쳐질 것입니다. 브라질의 빈민지역에서부터 모든 곳을 아우를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모든 방법들을 활용하는것은 개개인이 실행에 옮길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궁극적으로, 우린 그렇게 해야만 합니다. 우리는 함께 해야합니다.
그리고 지금 여러분들 앞에 서있는 이 순간, 이러한 과정을 지켜볼 사람들에게 저는 제가 만났던 모든 분들을 대신해서 너무나 흥분된다는 것을 알리고 싶습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이 함께 힘을 모을 수 있는 가능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모두 하나로 함께 모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기초적인 안건들에 대한 의식을 한 층 더 드높일 수 있을 것입니다. 또한 이러한 결과는 개인들로부터 이끌어질 것입니다. 저는 외교관인 브라히미(Brahimi)와 함께 했었습니다. 제 생각에 그는 가장 놀라운 사람 중 한 명이 아닐 까 싶습니다.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서 국제 정치 관계에 대한 것이라면 말이죠. 그 분은 정말 놀라운 분 입니다. 그리고 몇 주전 저는 그와 함께 대화를 나눴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죠. "브라히미씨, 세계적 정전을 이뤄내는 것이 말도 안되는 일일까요? 이것이 가능할까요? 우리가 정말 이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이 가능할까요?" 그러자 그가 이렇게 대답하더군요. "분명히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래서 또 물었죠, "당신이라면 어떻게 하실 건가요? 정부와 단체들에게 가서 조직적인 방식으로 다가가실 건가요?" 그러자, "아뇨. 저는 개개인과 얘기를 나눌 것입니다." 라고 대답했죠. 모든 것은 바로 개인 한명한명이 이루어내는 것입니다. 바로 여러분과 제가 이뤄낼 수 있는 것이죠. 이 모든 것이 협력으로 이루어 지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협력과 관심으로 이뤄내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함께, 다 함께 하는 것이, 바로 제가 생각하기에 변화를 이루어내는 출발점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지금 여기 계신 분 중 놀라운 한 분이 계십니다, 그 분이 어디 앉아계신지는 모릅니다만, 몇 일전 저에게 이런 말씀을 하신 분이죠. 잠깐 리허설을 할때였습니다. "저는 이 날을 기다려왔습니다. 그리고 이 날을 큰 네모가 365개의 칸으로 나눠진 거라고 상상해보세요, 그 중 한 칸만이 환한 날입니다." 이 말은 깨끗한 한 잔의 물을 떠올리게 해주었습니다. 여러분이 만약 한 방울을 떨어뜨린다면, 무언가 한 방울을 물에 떨어뜨리면, 영구적인 변화를 가져올 것입니다.
You can share this video by copying this HTML to your clipboard and pasting into your blog or web page. This video will play with subtitles.
You either have JavaScript turned off or have an old version of the Adobe Flash Player. To view this rating widget you
need to get the latest Flash player.
If your browser allows only "trusted sites" to execute Javascript, you should add the "googleapis.com" domain to your whitelist to allow our Flash detection to work properly.
Got an idea, question, or debate inspired by this talk? Start a TED Conversation.
여기 깜짝놀랄만한 아이디어가 있습니다. 바로 매년 9월 21일에 전 세계가 단 하루라도 평화 속에서 살자고 설득하는 것입니다. 이 활기넘치고 진실된 강연에서 제레미 길리는 어떻게 이 엄청난 아이디어가 현실로 이뤄졌는지를 전해드립니다. 이로써 전쟁으로 짓밟힌 지역의 수백만의 아이들을 도울 수 있었습니다.
Filmmaker Jeremy Gilley founded Peace One Day to create an annual day without conflict. And ... it's happening. What will you do to make peace on September 21? Full bio »
Translated into Korean by Hye ri Lee
Reviewed by Bianca Lee
Comments? Please email the translators above.
10:52 Posted: Jan 2011
Views 319,613 | Comments 193
20:27 Posted: Apr 2011
Views 829,283 | Comments 243
16:38 Posted: Aug 2008
Views 171,593 | Comments 65
Just follow the guidelines outlined under our Creative Commons license.
This comment will be attributed to . Not ? Sign Ou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