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접니다. 제 이름은 벤 손더스입니다. - 저는 추운 지역에서 무거운것을 끌고 - 다니는것을 전문으로 하지요
작년 5월 11일 저는 - 지리적북극에 혼자 서 있었습니다. 저는 그때 미국의 1.5배나 되는 - 5500 평방 마일의 북극의 얼음 세계에서 - 저 혼자 있었지요. 지금까지 2000명 이상의 사람들이 에베레스트를 - 정복했고 12명의 사람들이 달나라에 발을 디뎠죠. 그런데 스키를 신고 혼자 북극에 - 간사람은 저를 포함해서 4명밖에 - 안되는데 제 생각에 그 이유는... (박수) ... 감사합니다 - 그 이유는 크리스(사회자)가 - 말했듯이 그것은 미친짓이기 때문이지요. 북극으로 가는 것은 인간능력의 한계에 도전하는 행위입니다. 저는 10주동안에 800 마일을 걸었는데 이것은 - 연달아서 마라톤을 31번 한거나 마찬가지지요. 저는 거의 3개월 동안 필요한 모든 - 물건을 썰매로 운반했지요... - 식량, 모든 공급품, 장비, 침낭, 갈아입을 속옷 한벌 (웃음) 남은 약 16분간의 시간동안 저는 3가지 질문에 답하고자 합니다. - 첫번째 질문은 "왜 이 탐험을 했는가?" 이고 - 두번째 질문은 영하 40도에서 - 대소변을 어떻게 해결하는가 입니다. 사람들은 다음과 같이 묻습니다 "벤, 영하 40도에서는 - 1분 이내로 노출된 피부에 동상이 걸린다고 읽었는데 그럼 볼일을 어떻게 보지?" 이질문에 대한 답은 이 강연의 마감 부분에서 말씀드리지요. 세번째 질문은 "그럼 다음 계획은 무엇인가?" 이지요.
제가 2001년에 처음으로 북극탐험을 했습니다. 그때 저는 펜 해다우라는 노련한 탐험가와 같이 갔지요. 저는 그때 마치 북극탐험 견습생 같았습니다. 저희들은 여기 위쪽에 섬이 있는 곳에 있는 세베르마야 젬랴로 부터 - 스키를 신고 걸어서 북극으로 갈 계획이었지요. 제가 북극에 매력을 느끼는 이유는 - 지리적 북극이 북극해의 한복판에 있기 때문이지요. 이지역의 지도는 이것보다 더 좋은것을 - 구할래도 구할 수 없으며 북극에 갈려면 말그대로 - 북극 해 위에 떠있는 얇은 껍데기 같은 빙판위로 - 스키를 신고 걸어가는 방법밖에 없지요. 저는 많은 전문가들과 이야기를 나누었고 - 책도 많이 읽고 지도와 해도도 공부했지요. 그러던 어느날 아침 저는 저의 탐험계획이 - 얼마나 터무니 없는 것인가를 - 깨달았지요
저는 그당시 23살이었는데 제 나이에 - 이와 비슷한 탐험을 시도해본 사람이 없었지요. 저희들이 북극으로 출발한지 - 얼마 안돼서 사고란 사고는 다 발생했었지요. 둘째 날에는 북극곰 한마리가 저희들을 공격했고 - 제 왼쪽 엄지 발가락에 동상이 걸렸고 - 게다가 식량도 떨어지기 시작해서 배도 고프고 체중도 많이 잃었지요. 뿐만 아니라, 이상기후로 얼음 상태도 매우 나빴습니다. 저희들은 그때 - 아주 구식 통신 장비를 사용했지요. 위성전화를 살 돈이 없어서 HF 무전기를 사용했지요. 여기에 텐트 지붕위로 삐쳐나오는 스키 막대기 2개가 보이지요. 스키 막대기 양쪽끝에 전선이 아래쪽으로 달려있는데 - 그게 바로 저희들의 HF 무전기 안테나였지요. 저희들은 2달 동안에 바깥 세상과 - 불과 2시간 미만의 양방향 통신을 했었지요. 결국 탐험할 시간이 다 떨어지고 말았지요. 저희들의 총 640 킬로미터를 걸었지만 북극까지 약 320킬로미터가 - 되는 곳에서 시간이 다 하고 말았지요. 여름철이 다 되어서 얼음이 녹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러시아인 헬리콥터 조종사들과 무전기로 대화를 했는데 - 그들이 "이제 시간이 다 됐으니 당신네들을 - 데리러 가야 하오" 하더군요 그때 전적으로 실패감을 느꼈지요. 전 실패자였습니다.
제가 가졌던 단 하나의 꿈, 제가 그렇게 - 오래 간직했던 꿈은 현실과 너무나 거리가 멀었지요. 제가 처음으로 북극 탐험을 갔었을때 - 저는 힘이 들때 마다 기운을 내기 위해 제가 계속 되풀이해서 - 제 눈앞에 그리는 비디오 영상이 두개 있었습니다. 그 첫번째 것은 제가 북극에 도착하자마자 - 록 뮤직 같은 것이 배경에 들리며 - 제가 스키 막대기에서 펄렁거리는 영국 국기를 들고 있는 것을 - 카메라맨이 헬리콥터 문을 열고 비디오 카메라로 찍고 있고 - - - 저는 그때 최고조에 달하는 음악에 맞추어 영국국기를 - 북극에 콱 꼽는 거죠... 아, 영광스러운 장면이죠... 제가 두번째로 상상하는 비디오 클립은 - 제가 탐험에 성공한 후 히드로 공항에 도착하는 장면인데 - 저는 카메라 플래시가 터지고, - 파파라찌들이며, 사인을 받으려는 사람 - 책 출판권을 받으려는 출판사 사람들 .. - 이런 장면들을 아주 생생하게 눈앞에 그릴 수 있었지요. 물론, 제가 런던에 도착했을땐 이런것들이 하나도 없었지요. 저희들은 북극에 가지도 못했고 돈이 없어서 홍보도 - 못했었고 그래서 저희들의 북극탐험에 대해 아는 사람은 - 아무도 없었지요.
제가 히드로 공항에 도착했을때 마중나온 사람들은 저의 어머니, 동생 그리고 - 작은 영국국기를 들은 제 할아버지 밖에 없었지요. (웃음) - - 그냥 그게 다였고 저는 다시 어머니의 집에 살러 갔지요. 저는 신체적으로 지칠대로 지쳤고, - 정신적으로도 엉망이었으며, 낙오자라고 생각했지요. 뿐만아니라, 탐험 비용때문에 개인적인 빚도 많았고 - 저는 매일 어머니 소파에 누워서 - 대낮에 텔레비젼이나 봤지요. 하루는 제 동생이 저한테 문자를 보냈지요. 심슨네 가족의 말을 인용한 것이죠. - "당신은 최선을 다했으나 비참하게 실패했다. - 교훈은 시도도 하지 말라는 것이다." (웃음)
이하 생략하고 3년후로 가겠습니다. 저는 드디어 소파에서 - 일어나서 다시 탐험을 계획하기 시작했지요. 그러나 저는 이번엔 혼자 북극을 가려고 했지요- - - 지도의 윗쪽에 있는 러시아에서 출발해서 - 중간쯤에 선이 꺽어지는 곳에 위치한 북극을 경유해서 - 카나다로 가는 것이죠. 그당시 북극해양 전체를 혼자 건넌 사람은 한명도 없지요. 2000년에 노르웨이 2인팀이 완주한 적은 있지만 단독주행은 없었지요. 1995년에 세계적인 이탈리아 등산가인 - 레인홀드 메스너가 시도했었지만 - 1주일 후에 구조당했지요. 그는 북극 탐험이 에베레스트보다 10배나 - 더 위험하다고 말했지요. 왜 그랬는지는 모르지만 제가 하고 싶었던 것은 바로 그것이었지요. 저는 카나다까지 걸어가는 것은 고사하고 안전하게 - 살아서 집으로 돌아가려면 혁신적인 - 방법을 사용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지요. - 그애서 칫솔의 무게를 2그램 미안으로 - 줄이기 위해 톱으로 칫솔을 반으로 잘르고 - 매일 필요한 6000 칼로리의 영양가를 섭취할 수 있도록 - 세계적인 유명 영양학자와 새로운 영양음식을 - 개발하는 등의 혁신적인 조치를 - 취해야 했지요.
드디어 작년 2월에 탐험을 시작했는데- - - 지원팀의 규모는 컸습니다. 촬영팀, - 로지스틱 담당자 2 명, 제 여자친구 - 그리고 사진사 한명이 있었지요. 처음에는 모든 것이 잘 진행되었고 저희들은 BA편으로 모스코바로 갔지요. 시베리아에서는 크라스에어라는 - 국내항공편으로 크라스노야르스크로 갔지요. 스펠링이 K-R-A-S이지요 ('추락'과 비슷하게 들림) 그후에는 낡은 러시아 비행기 한대를 전세내서 - 카탕가라는 작은 도시로 갔는데 - 그곳은 마치 문명의 종점 같은 곳이였지요. 비행조건이 좋을때라도 비행기 타는 것을 두려워하는 저희 카메라맨이 - 조종사에게 그곳까지 비행시간을 물었더니 - 그 러시아 조종사는 눈섭하나 까딱안하고, 우리가 추락해서 - 죽지 않으면 6시간 걸린다고 답했지요. (웃음) 드디어 저희들이 카탕가에 도착했는데 - 카탕가는 세상의 끝은 아니지만 그곳에서 세상의 끝을 볼 수는 있다는 농담이 있더군요. (웃음) 원래는 그곳에서 하루밤만 지내기로 했었는데 그곳에서 10일이나 갇혀 있었지요. 그 이유는 헬리콥터 조종사들과 헬리콥터 주인이 - 술을 먹고 임금 문제로 싸웠기 때문이었지요. - 그래서 우리는 꼼짝 못하고 그곳에 갇혀있었지요. 드디어 11일째 아침에 모든 문제가 해결되어 - 헬리콥터 2대에 모든 장비를 실고 종렬비행으로 날아갔지요 -- 그리고는 유빙구역의 가장자리에 저를 내려놓고 - 45분 동안 정신없이 비디오와 사진을 - 찍었지요. 헬리콥터가 그곳에 있는 동안에 - 저는 인공전화로 인터뷰를 했지요 그러더니 모두들 헬리콥터 안으로 들어가고 - 헬리콥터 문이 쾅 닫히더니 저혼자만 밖에 남았지요.
저는 그 순간을 어떻게 말로 표현해야 좋을지 모르겠어요. 헬리콥터로 달려가서 문을 막 두드리며 - "여보게들, 난 이럴줄은 미처 생각 못했어" - 라고 외치고 싶었지요. (웃음) 그런데 설상가상으로,.. 화면의 상단 오른쪽에 하얀 - 점이 보이지요? 그게 보름달입니다.
저희들이 러시아에서 꼼작못하고 있었기 때문에 벌써 - 밀물과 썰물의 차이가 가장 높은 보름달이 된것이죠. 얼어붙은 바다표면에 서있으면 - 밀물이나 썰물이 생길때 흥미있는 - 현상이 일어나는데 그것은 발밑에 있는 얼음이 조금씩 움직인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볼수 있듯이 저는 썰매 2개를 끌었지요. 95일간의 식량과 연료 무게를 다 합쳐서 - 180 킬로그램 그러니까 거의 400파운드 이었지요. 얼음이 평평할때나 비교적 평평할때는 - 썰매 두개를 간신히 끌수 있었지요. 얼음이 평평하지 않았을때는 어림도 없었지요. 그럴때는 - 썰매 하나를 먼저 끌고 다시 돌아가서 두고 온 썰매를 끌고 와야 했지요. 해류, 바람 및 조류에 의해 바다 표면에 있는 얼음에 - 압력이 가해지면 일부 얼음이 부서지며 위로 솟아 올르면서 소위 압력얼음이라는 - 것이 생는데 저는 그 사이를 지나 가야했지요. NASA는 기록이 시작됀 이래 작년의 얼음 상태가 가장 나빴다고 보고했습니다. 북극해양의 얼음은 항상 떠내려가지요. 제가 작년에 북극 지역에서 혼자 지냈던 - 10주 중 9주 동안은 맞바람을 맞으며 걸어야 했는데, - 설상가상으로 대부분 동안 얼음은 제가 가는 방향의 반대방향으로 표류했지요. 저의 하루 기록은 -4 킬로미터 였지요. 아침에 일어나서 텐트를 걷고, 7시간 반 동안 하루 종일 북쪽으로 걸은 후 - 저녁때 텐트를 치고 보니까 아침에 시작했던 곳보다 4 킬로미터 - 더 남쪽으로 밀려가 있는 것이죠. 제 보행속도가 얼음의 표류속도를 따라가지 못했던 것이죠.
(비디오): 자 - 22일째 되는 날입니다. 텐트안에 누워서 밖으로 나갈 준비를 하는 중입니다. 오늘 날씨가 지독하게 나쁩니다 -- - 그리고 어제밤에는 제가 가는 방향의 - 반대방향으로 약 8 킬로미터를 표류했지요 제 탐험의 후반부에는 얼음이 문제가 아니라 얼음이 없는게 - 문제였지요 -- 즉, 개빙구역을 말합니다. 저는 북극해양이 더워지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기대는 했었지요. 그런데 개빙구역이 많이 있다는 것을 알고 미리 준비해 둔 비장의 무기가 있었지요. 그것은 일종의 생물모방 같은 것이었지요. 북극해양에 있는 북극곰들은 곧바른 일직선으로 걸어가지요. 개빙구역이 나오면 물로 들어가서 가던 방향으로 수영을 하지요. 그래서 저는 노르웨이에 있는 팀과 함께 헬리콥터 조종사들도 - 입을 만한 구명복 비슷한 - 건식잠수복을 개발했는데 그 옷은 - 구두도 신고 장갑도 낀채로 입을 수 있고 옷을 얼굴까지 오게 추겨입으면 - 물이 새 들어가지 않게 고무 시일로 얼굴 주위를 확실하게 방수시켜 주지요. 그렇기 때문에 이옷을 입으면 얇은 - 얼음위에서도 스키를 신고 걸을 수 있고. - 만약 물에 빠진다해도 그렇게 큰 재앙이 아니지요. 또한 최악의 경우에는 물에 들어가서 - 건너편까지 수영을 한 후 썰매를 - 끌어 올릴 수 도 있지요. 이 옷은 혁신적인 생각과 혁신적인 기술의 - 합작이라고 할 수 있는데 완벽하게 작동했지요.
저희들이 작년에 사용했던 통신 장비도 - 매우 혁신적인 장비였지요. 1912년에 색클턴의 인듀런스호에 승선했던 - 선원중에 토마스 오드-리스라고 불리는 선원이 있었는데 - 그는 "만약에 2012년에 지구에서 탐험할 - 곳이 남아있다면 탐험가들은 - 분명히 무선 망원경이 달린 포켓형 - 무선 전화기를 들고 다닐것이다"라고 말했지요. 오드-리스는 불과 8년만 틀렸지요. 이것이 바로 저의 소형 무선 전화 - 즉, 이리듐 위성전화이고 - 무선 망원경은 제 주머니에 있던 디지털 카메라였지요. 저는 72일 동안 얼음 위에서 혼자 있었지만 - 텐트안에서 매일 라이브 블로깅을 했지요. - 짧은 일기도 보냈고 - 제가 스키신고 걸은 거리에 대한 정보 -- - 얼음 상태, 온도 -- - 그리고 매일 사진도 보냈지요. 2001년에 저희들이 - 바깥 세상과 무선 연락을 했던 시간이 두시간 미만이었던 걸 기억하시죠?. 작년에 저는 에베레스트보다 10배나 더 - 위험하다는 탐험을 하는 도중에 라이브 블로깅을 했지요. 그런데 제가 항상 첨단 기술만 사용하는 것은 아니지요 이사진은 '화이트 아웃' 상태를 보여줍니다. 안개가 많이 끼고, 낮은 구름이 끼고, 강풍으로 눈이 날리면 시야가 극도로 - 제한되는데 그것을 화이트 아웃이라고 하죠. 제 스키 막대기에는 - 노란 리본이 묶여있는데 저는 화이트 아웃 상태에서는 - 그 리본이 날리는 방향을 보고 걸어갈 방향을 찾았지요. 그러니까 첨단 기술과 재래식 기술을 함께 사용한 셈이지요.
저는 5월 11일에 북극에 도착했습니다. 러시아에서 북극까지 68일이 걸렸는데. - 북극에 가보니 아무것도 없더군요. (웃음) 북극(pole)에 막대기(pole) 하나 없더군요. 정말 아무것도 없어요. 표류하는 바다 얼음이니 그럴 수 밖에 없죠. 북극에 기를 꼽고 내버려 두면 주로 카나다나 그린랜드로 쪽으로 표류하지요. 저는 물론 이런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무엇인가를 기대 했었지요. 찹찹한 감정이었지요. 또 기온이 매우 높아서 - 제 주위에 개빙구역들이 많이 있었고- - - 물론 제힘으로 북극에 도착한 사실은 극도로 기뻐했지요. 하지만 저는 640 킬로미터나 - 떨어진 거리에 있는 카나다까지 걸어 갈수 있는 -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사실을 실지로 - 느끼기 시작했지요. 제가 북극에 도달했다는 유일한 증거는 - 제 휴대용 GPS를 찍은 희미한 사진 한장 뿐입니다. 이 사진에는 - '9'자가 보이고 그옆에 '0' 자가 쭉 보이지요. 북위 90도 --- 여기가 정확히 북극이지요. 저는 사진을 찍은 후 제 썰매 위에 앉아서 비디오 일기 같은것을 하나 만들었지요. 사진을 몇장 더 찍은 후, 위성 전화를 꺼내고 - 겨드랑이에서 건전지를 녹였지요. 그러구 3군데로 전화를 걸었지요. 제 어머니 - 여자친구 그리고 저의 스폰서 사장에게 전화를 했지요. 그런데 전부 다 음성 우편으로 넘어가더 군요. (웃음) (비디오): 90. 아주 특별한 기분이지요. 지구 전체가 - 제 발밑을 중심으로 - 회전하고 있었지요. 세계 전체가 제 밑에 있는 것이지요 결국 저의 어머니랑 통화를 했는데. 어머니는 수퍼마켓에서 줄서고 계셨지요. 어머니가 울기 시작하시더니 다시 전화하라고 하시더군요. (웃음)
저는 북극을 떠나 일주일 동안 스키를 신고 걸었지요. 저는 얼음 상태가 너무 위험해 지기 전에 - 제가 갈 수 있는데 까지 카나다 쪽으로 가고 싶었지요. 이건 제가 북극바다의 얼음위에서 보낸 마지막 날이었습니다. 저의 프로젝트 매니저 팀과 통화를 했을때 - 그가 말하기를 "벤, 상황이 너무 위험해지고 있소 - 당신이 있는 바로 남쪽에 큰 개빙구역들이 많소. - 그러니 당신을 데리러 가야 겠소. - 벤, 활주로로 쓸만한 곳을 찾아 볼 수 있소?" 하더군요. 제가 운명적인 이 전화를 받았을때 - 저의 텐트 밖의 전경은 이러했습니다. - 저는 활주로를 만든 경험이 없었지요. 탐험대 매니저인 토니가 말하기를 "벤, 활주로로 사용할 수 있는 500미터 길이의 빙판이 꼭 필요하오. - 평평하고 두꺼운 안전한 얼음이래야 하오" 라고 말하더군요. 저는 그래서 적당한 활주로를 찾느라고 - 스키를 타고 36시간을 헤멧는데 제가 간신히 찾은 빙판은 - 정확히 473 미터였습니다. 제가 스키로 거리를 쟀지요. 그러나 토니나 조종사에겐 그말을 하지 않았어요. 착륙할 곳이 그곳 밖에 없었으니까요. (비디오): 오,오,오,오,오.오
가까스로 성공했지요. 아주 극적인 착륙이었죠. 사실은 비행기가 4번이나 돌았드랬는데. - 저는 비행기가 착륙하지 못 할까봐 좀 걱정을 했었죠. 저는 조종사의 이름이 트로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죠. 저는 이런 일을 본업으로 하는 - 트로이라는 친구가 아주 터프한 사람일 것이라고 기대했지요. 비행기가 막상 착륙할 때 저는 막 울었지요. 매우 감동적인 순간이었죠. 그런데 저는 소위 말하는 거칠고 터프한 탐험가 타입이니까 - 트로이 앞에서 눈물을 보여서는 안된다고 생각했지요. 비행기가 제가 서있는 쪽으로 굴러왔지요. 비행기 문이 열리고 조종사가 뛰어 내리며 "하이, 트로이라고 합니다" 그러더군요. (웃음) 부조종사는 모니카라는 여자였는데 - 손 뜨개질을 해서 만든것 같은 스웨터를 입고 앉아 있었지요. 그들은 제가 지금까지 만난 사람중에서 가장 터프하게 보이지 않는 사람들이었죠. 저는 그들을 보고 매우 기뻣습니다. 트로이 - 트로이는 얼음위에서 담배를 피웠죠. 우리는 사진을 몇장 찍었지요. 그는 비행기 스텝을 올라가며 '그냥 뒤에 앉으세요' 라고 말했죠. 그는 담배를 밖에 버리고 앞쪽으로 갔고 - 저는 뒷쪽으로 갔지요. (웃음) 트로이는 활주로를 조금 더 평평하게 만들려고 - 활주로 위를 몇번 왔다갔다 하더니 "에또 지금 --- - 한번 해 보자" 그러며 - - - - - 지금은 트로이가 하는 행동이 누구나 다 하는 것이라는 것을 알지만, 그때는 제가 꽤 걱정을 했었지요 - - - - 트로이가 엔진 스로틀바에 손으로 댔지요. - 조종실 천장에 엔진 컨트롤이 보이죠. - 저기에 보이는 작은 막대기가 엔진 스로틀이지요. - 모니카가 아주 조심스럽게 그녀의 손을 트로이 손위에 대더군요. 저는 "아이고 이제 출발하는구나 ...이젠 죽기 살기다" 라고 생각했죠. 스로틀 레버를 앞으로 콱 미니까 비행기가 활주로 위로 튕기며 질주하더니 공중으로 뜨기 시작했는데 - 비행기 밑에 달린 스키 하나가 활주로 끝에 튀쳐나온 얼음에 살짝 부디쳤지요 - 비행기가 회전할때 조종실을 보니 트로이는 조종대와 씨름을 하고 있었지요. 그러더니 트로이가 가까스레 한손을 뒤로 뻗히며 - 조종실 천장에 달린 스위치를 키더군요. 그랬더니 "안전벨트를 매십시요" 라는 사인이 점등되더군요. (웃음) 저는 비행기에서 전반적인 얼음 상태를 볼 수 있었지요. 물론, 얼음 위에 서있을때는, 눈앞에 있는 압력능선이나 해빙구역 같은 - 장애물이 그때그때 하나만 보이지요. 비행기에서 보니까 얼음이 붕괴되기 시작한 것을 한눈에 볼 수 있었는데 아마 - 그래서 트로이가 활주로의 길이에 대해 불평하지 않았던것 같습니다.
이제는 제가 왜 이런 탐험을 하는가에 대해 말씀드리지요. 저는 돌아다니며 지도를 만드는 전통적인 이미지의 - 탐험가가 아닙니다. 북극이 어디에 있는지 누구나 알지요. 남극에는 큰 과학기지가 있습니다. 활주로도 있구요. - 카페도 있고 기념품가계도 있지요. 제가 탐험을 하는 이유는 인간의 생리적 그리고 - 심리적인 한계와 과학기술의 한계를 시험하기 위한 것이지요. 바로 이런것들이 저를 흥분시킵니다. 이것은 또한 제 자신의 가능성에도 관계되지요. 탐험은 제가 저의 한계를 얼마나 밀고 - 나갈수 있는가를 알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주지요. 그리고 좀 더 넓은 관점에서 볼때, 우리들은 - 우리들이 발휘할 수 있는 잠재력의 - 불과 4-5%만 성취하고 있다는 것은 - 놀라운 사실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저의 북극 탐험이 - 우리들이 이 세상에서 짧은 인생을 - 보내는 동안 우리 모두가 가진 잠재력을 - 최대한으로 발휘하여 우리 각자가 원하는 바를 성취할 수 - 있도록 용기를 북돋아 주는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가 하고 싶은 말을 재주껏 요약하자면 바로 이것입니다.
다음 질문은 영하 40도 에서 어떻게 볼일을 보냐는 것입니다. 그 답은 -- 이건 물론 영업비밀입니다 - -- 간단한 답은 "가능한 한 빨리"이지요. 요건 나중에 한 1분 정도 남으면 제가 좀더 자세히 말씀드리지요. 다음 질문은 다음 프로젝트는 무엇이냐는 것입니다. 다음 프로젝트는; 남극대륙입니다. 남극대륙은 세계에서 가장 춥고, - 고도가 높고, 바람이 많이 불고 건조한 대륙이지요. 1911년 말, 1912년 초에 - 남극대륙의 한복판에 있는 남극에 - 처음으로 도달하는 사람이 되려는 경주가 있었지요. 남극대륙의 빙붕을 포함하면--- 여기에 로스 빙붕이 보이지요 -- - 여기 아래에 있는 큰 지역이지요 -- 로스 빙붕은 프랑스 만한 크기이죠 - 빙붕까지 포함하면 남극대륙은 - 오스트레일리아의 2배가 되지요 -- 큰 지역입니다. 아문센과 캡틴 스콧간에 누가 남극에 먼저 도착하느냐는 경주가 있었지요. - 노르웨이의 아문센은 개썰매와 허스키개를 사용했고 - 영국의 캡틴 스콧은 - 조랑말과 트랙터 몇대 그리고 개를 몇마리 가지고 - 갔는데 그것들은 전혀 쓸모가 없었지요. - 그래서 결국 스콧과 그의 팀원 4명은 결국 걸어 가야 했지요. 그들이 1912 년 1월 말에 남극에 도착해서 보니까 - 거기엔 벌써 노르웨이 국기와 - 텐트, 그리고 노르웨이 국왕에게 쓴 편지가 있었지요. - 그래서 그들은 다시 해안으로 발길을 돌렸지요 - 그런데 귀환길에서 5명 모두가 목숨을 잃었지요. 그 이후로는 아무도 스키를 타고 남극에 간 사람이 없습니다 -- 그게 93년 전 이었는데 -- 그 이후로는 아무도 스키를 타고 - 남극대륙 해안에서 남극까지 갔다가 다시 해안으로 돌아온 사람은 없지요. 여러분들이 지금까지 들어본 모든 탐험대들은 - 남극에 도착한 후 비행기를 타고 떠났거나 또는 차량, 개 또는 - 연 같은 것을 사용했고 왕복여행을 한 사람은 - 한명도 없지요. 그래서 저는 왕복 스키여행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2인팀으로 할 계획이지요. 이게 다 입니다.
마지막으로, 위의 화장실 가는 이야기를 끝매듬하지요. - 아참!! 제가 13살때 받은 학교 성적표를 스캔해서 - 여러분께 보여들릴려고 했는데 제가 깜빡있었네요--- - 저는 그 성적표를 액자에 넣어서 제 책상 위에 놓고 있지요.... - 그 성적표에는 "벤은 가치있는 일을 - 할 수 있는 정신력이 모자란다." 라고 써있지요. (웃음) (박수) 제가 지금까지 살며 한가지 배운것이 있다면 그것은 그 누구도 - 여러분의 잠재력을 알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당신이 무엇을 얼마만큼 성취할 수 있는 가를 결정할 수 있는 사람은 당신뿐입니다. 신사 숙녀 여러분, 이것이 제 이야기의 전부입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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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극 탐험가 벤 손더스가 힘들었던 그의 단독 북극 스키 여행을, 재미있는 일화와 아름다운 사진 그리고 예전에 공개된 바 없는 비디오로 회상한다.
In 2004, Ben Saunders became the youngest person ever to ski solo to the North Pole. In 2013, he’ll set out on another record-breaking expedition, this time to be the first to walk from the coast of Antarctica to the South Pole, and back again. Full bio »
Translated into Korean by Eun-mee Kwon
Reviewed by Young-ho Pa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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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3 Posted: Apr 2009
Views 529,753 | Comments 96
17:43 Posted: Jun 2007
Views 707,201 | Comments 201
12:15 Posted: Mar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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